최저 주거기준, 평균이 되다 [청춘,방에갇히다②]

기사승인 2023-01-31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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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주거기준, 평균이 되다 [청춘,방에갇히다②]
직장인 김원(29·가명)씨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원룸에 살고 있다. 김씨의 집은 18.8㎡(5.7평)의 원룸이다. 서울 상경 후, 고시원에서 시작해 3번의 이사를 거쳐 이 원룸에 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어느 정치인이 고시원을 방문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방. 그는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느냐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법에서 정한 최저 주거기준은 14㎡(4.2평). 좁디좁은 공간에 부엌, 침실, 화장실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대다수는 청년이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서울 곳곳 좁은 청년의 방을 찾아 문제점을 살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는 청년의 방을 생생히 담은 360도 카메라와 영상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4년 전, 대구에서 상경한 직장인 김원(29·가명)씨. 그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누운 곳은 6.6㎡(2평) 고시원이었다. 좌우로 몸을 돌리기 힘든 딱딱한 침대. 몸을 쭉 펴면 어딘가에 닿았다. 그게 벽일 때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작은 냉장고일 때도 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한 후 집부터 옮겼다. 13.2㎡(4평) 조금 넘는 반지하. 집에 둔 물건들의 뒷면은 곰팡이로 가득했다. 이곳에서도 오래 살기는 힘들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셰어하우스였다. 김씨의 것은 방 한 칸. 고시원 크기와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과 부엌, 거실을 남들과 나눴다. 그리고 지금, 밥 먹을 돈까지 아껴 도착한 곳은 18.8㎡(5.7평)의 원룸이다. 보증금 1000만원에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 56만원을 낸다. 아무리 옮겨도 두 자릿수 평수로는 갈 수 없다. 법에 따른 1인 가구 최저 주거기준 14㎡(4.2평). 김씨의 주거 면적은 언제나 그 안팎이었다.

청년의 집은 최저 주거기준에 맞춰 결정된다. 자금이 넉넉하면 14㎡ 더 넓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좁거나. 책상, 옷장, 냉장고에 이불 하나 펴면 발 디딜 틈 없는 집. 최저 기준은 평균이 됐다.  

최저 주거기준, 평균이 되다 [청춘,방에갇히다②]
지난해 기준 서울 관악구에서 계약이 체결·연장된 4평 이하 집은 총 5178건이다. 이 중 최저 주거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3평대 집은 약 20%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3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서 지난해 서울 관악구 부동산 거래 내역을 살폈다. 관악구 청년(20~34세) 인구 비율은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위다. 구 전체 인구의 34%는 청년이다. 관악구는 서울 다른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세가 저렴하다.

지난해 관악구에서 계약이 체결·연장된 16.52㎡(약 4평) 이하 집은 5178건이다. 이 중 13.22㎡(약 3평) 이하 집은 1051건에 달한다. 단독·다가구 주택,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기준이다.

좁아진 크기만큼 비용도 줄었을까. 4평 크기지만 집세는 적지 않았다. 월세·준월세 기준 평균 보증금은 1045만원, 월 40만원이다. 14.72㎡(4.4평)에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20만원 집도 있다. 전세 평균은 1억1220만원이다. 최저 기준보다 적지만 전세 3억원에 계약이 체결된 곳도 있다. 12.6㎡(3.8평) 또 다른 오피스텔 전세가는 2억2100만원이다.

최저 주거기준, 평균이 되다 [청춘,방에갇히다②]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연준(25)씨의 18.5㎡(5.6평) 자취방. 침대를 놓으면 집이 꽉차기에 접이식 매트리스에서 잠을 청한다.   사진=이소연 기자 
취업준비생 박주현(29·가명)씨는 저렴한 집을 찾아 서울을 훑다가 관악구 반지하 원룸에 정착했다. 면적은 14.8㎡(4.5평).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이부자리를 밟고 다닐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이다. 박씨는 “개인 사정상 부모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가진 것이 없기에 4.5평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세자금과 학자금 대출을 포함한 빚은 9000만원. 청약을 알아보고 있지만 언제쯤 넓은 집으로 옮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청년들은 최저 주거기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실제로 1인 가구가 살아갈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취재하며 만난 청년들은 “최저 주거기준을 만든 사람들에게 ‘네가 한번 살아보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 “어떤 기준으로 1인 가구의 면적이 고려된 것인지 궁금하다”고 질타했다.

주거기본법 제17조1항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관한 지표로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공고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최저 주거기준을 12㎡(3.6평)로 정했다. 이후 2011년 14㎡으로 늘렸다.

최저 주거기준, 평균이 되다 [청춘,방에갇히다②]
2011년 최저 주거기준을 마련한 국토교통부 주택정책심의위원회 당연직 공직자들의 주거 평수. 평균 면적은 40.8평이다. 김원씨의 집이 6개 들어가는 크기다. 그래픽=이소연 기자  
해당 기준은 국토교통부 주택정책심의위원회(현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에서 정해졌다. 2011년 기준, 주정심에는 국토해양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 행정안전부 2차관,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 지식경제부 1차관, 환경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관보에 따르면 이들이 소유한 주택의 평균 면적은 134.9㎡(40.8평)이다. 가장 적은 면적은 84.28㎡(25.4평), 가장 넓은 면적은 239㎡(72.2평)이다. 14㎡의 최소 6배에서 최고 17배 이상이다. 2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이는 10명 중 5명이었다.

2011년 주정심 위원장이었던 정종환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파트 2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각각 133.08㎡(40.2평), 158.97㎡(48평)이다. 지난 2004년 주정심위원장인 강동석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의 아파트 면적은 366.13㎡(110평)으로 확인됐다. 2004년 정한 최저 주거기준 12㎡의 30배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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