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기사승인 2023-02-03 06: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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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비타민 목욕탕에서 주민들이 목욕을 마친 후 머리를 말리고 있다. 연탄은행 제공 
욕탕에 뜨거운 물이 다 차기도 전, 수도꼭지를 냉수 쪽으로 살짝 돌린다. 온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2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욕탕. 물이 식기 전, 먼저 들어가라며 서로에게 양보한다. 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대야에 조금씩 물을 받아 사용한다. 공중목욕탕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솔선수범하며 절약에 나선다. 목욕을 마친 후 머리를 말리던 김경애(67·여·가명)씨는 “난방비가 엄청 올랐는데 아껴야죠. 이 목욕탕 절대 없어지면 안 돼요”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백사마을 ‘비타민목욕탕’의 풍경이다.

“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위치한 비타민목욕탕. 서울 연탄은행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백사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주요한 복지 공간이다.    사진=임형택 기자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취약계층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후원으로 운영되는 공공목욕탕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일 노원구 백사마을에 위치한 비타민목욕탕을 찾았다. 비타민목욕탕은 서울 연탄은행에서 운영하는 백사마을 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예약제로 운영된다. 수요일에는 남성, 목요일에는 여성이 이용할 수 있다. 한 달 이용객은 총 100명 남짓이다. 백사마을 120여가구가 주 이용자다.  

“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2일 오전 한 주민이 비타민목욕탕을 찾았다. 비타민목욕탕은 매주 수요일 남성, 목요일 여성이 이용할 수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날 오전 9시40분 비타민목욕탕은 7명의 이용객으로 북적였다. 이용을 위해 주민들은 아침부터 줄을 섰다. 목욕을 마친 이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목욕비는 무료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물값이라도 내겠다”며 1000원, 2000원씩 지불했다. 비타민목욕탕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도움 없이 운영한다. 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감면 혜택도 없다. 

“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난방용 등유를 운반하기 위한 차량이 백사마을 골목을 지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급격하게 오른 에너지 비용은 목욕탕 운영에 영향을 끼쳤다. 비타민목욕탕은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 전기온수기 등을 사용해 운영된다. 백사마을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전에는 목욕탕 운영에 사용되는 에너지 비용이 한 달 10만원 미만이었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전기온수기 비용만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2배 이상으로 에너지 비용이 상승한 것이다. 

비타민목욕탕 운영을 담당하는 한광욱 연탄은행 주임은 “기존 20만원 정도하던 등유 200ℓ가 35만원으로 올랐다”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주 2회로 줄였던 운영을 다시 주 4회로 늘리려고 하는데 에너지 비용이 부담된다. 후원도 줄어 애로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오피넷에 따르면 실내 등유 가격은 2020년 4분기 810원에서 지난해 4분기 1583원으로 훌쩍 뛰었다. 

“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한 주민이 부엌과 세면장 사이에서 손을 씻고 있다. 작은 대야에 받아 둔 물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사진=임형택 기자 
목욕탕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면 백사마을 주민의 불편도 커진다. 백사마을 대다수 가구 내에는 목욕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있더라도 난방비 부담으로 인해 사용하기 어렵다. 이날 목욕을 마치고 나온 80대 주민 A씨의 집을 방문했다. 현관문을 열었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부엌 바로 옆 마련된 수도시설. 물을 받아둔 대야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집의 유일한 세면장이다. 온수는 나오지 않는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워 사용해야 한다. 몰아치는 웃풍으로 인해 씻기도 어렵다. 거동이 어려워 시내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 가기 힘들다. A씨가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이날 목욕탕에서 만난 김귀분(77·여)씨도 “집에서는 씻을 수가 없다. 들통에 물을 데워야 한다”며 “이곳이 있어 너무너무 좋다. 이 마을에서 목욕탕이 꼭 필요한 곳이라고 기사에 써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난방비 걱정에 시름” 달동네 목욕탕도 휘청인다
2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풍경.   사진=임형택 기자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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