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없어 못 만든다… 원료의약품 자급력 빨간불

기사승인 2023-02-04 0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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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없어 못 만든다… 원료의약품 자급력 빨간불
쿠키뉴스 자료사진

원료의약품 부족으로 인한 의약품 수급 장애가 반복되고 있다. 원료의약품 자급력을 제고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강조되고 있다.

최근 변비약 ‘마그밀’이 원료 수급 장애로 품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마그밀은 ‘수산화마그네슘’ 500mg을 단일 성분으로 하는 일반의약품으로, 삼남제약이 공급한다. 변비증을 비롯해 위·십이지장궤양, 위염, 위산과다 등의 증상에 쓰인다. 다른 성분이 함유된 시중의 타 제품 대비 부작용이 적고, 임산부와 노인 환자에게도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요가 높다. 

수산화마그네슘 부족은 지난해부터 고질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삼남제약은 공지문을 내고 “수산화마그네슘 원료 공급처의 생산라인 원인으로 원료 공급이 다소 지연되고 있어, 제품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공급 지연으로 인해 업무에 불편을 드려 죄송한 말씀을 드리며,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인터넷상에서는 그동안 마그밀을 복용했던 환자들의 불안감이 확산했다. 임신·출산·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임신 중이고 변비가 심한데, 방문하는 약국마다 마그밀이 품절이다’, ‘마그밀 여유분 갖고있는 분 계시면 구매를 원한다’ 등의 글이 게시됐다. ‘보이는 제품은 미리 사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향후 장기 품절에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마그밀을 구할 수 있는 약국의 위치가 공유되기도 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삼남제약-마그밀정(수산화마그네슘)이 지속적으로 생산·공급되고 있으나 수요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으로, 동일 성분 의약품 또는 유사 효능 의약품으로 분산 처방 등의 협조를 요청드린다”는 내용의 공문을 낸 상태다.

원료 부족 우려가 제기된 품목은 변비약뿐이 아니다. 그동안 독감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환자가 증가하는 동절기가 되면 ‘이부프로펜’과 ‘아세트아미노펜’ 등의 원료 수급 문제도 반복됐다. 이들 원료는 통칭 감기약으로 불리는 진통소염해열제 성분이다.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생산·수입·공급이 중단된 완제의약품 567개 중 31개가 원료 수급 문제로 인해 공급이 중단됐다. 이 중 17개는 국내에 항상 일정 물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국가필수의약품이었다.

높은 수입 의존도가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20년 기준 36.5%에 머물렀다. 식약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의 원료의약품등록 공고에 따르면, 3일 기준 등록된 아세트아미노펜은 총 113건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된 원료다. 미국과 인도가 각각 10여건이며, 대한민국은 5건에 그쳤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아세트아미노펜이 끊긴다면, 국내 감기약 시장은 속수무책으로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가격경쟁력과 시장 환경을 고려해 원료의약품 사업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원료의약품이 국내외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후발 주자로 사업을 벌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료의약품 자급도를 높이기 위한 공적 지원 정책이 미비하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자사에서 합성한 원료를 사용하는 제네릭의약품은 출시 이후 1년간 68%의 약가 산정(일반 59.5%)을 받는다. 하지만 우대 기간이 짧고, 실제로 이 혜택을 적용받은 품목도 적어 효과가 크지 않다.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장은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와 설비 비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원료의약품 사업을 확장하면)채산성이 좋을 수가 없다”며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의 사업 동기를 부여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료의약품은 수출국이 수출량을 의도적으로 통제해 무기화할 수 있어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며 “정부가 나서서 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정책과 같은 독려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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