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오자 게임업계 칼바람… 고용 불안 문제 재점화

기사승인 2023-02-09 1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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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오자 게임업계 칼바람… 고용 불안 문제 재점화
게임사가 밀집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연합뉴스

연초부터 닥친 고용 한파에 게임업계가 얼어붙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 호황을 틈타 공격적인 채용 및 사업 확대 등을 시도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몇몇 중소 게임사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사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업계의 고질적인 고용 불안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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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출시된 킹스레이드. 이후 신작 부재로 경영악화에 빠졌다.   베스파

중소 게임사 잇따라 구조조정… 대형 게임사도 비용 감축 몰두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베스파와 원더피플, 엔픽셀, 데브시스터즈 등의 중소‧중견급 게임사들이 연이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형 게임사들 역시 인건비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킹스레이드’로 유명한 베스파는 작년 여름 극소수의 핵심 인력을 제외한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2017년 킹스레이드 흥행에 성공하며 연간 1000억원 넘게 벌어들였고, 2018년 코스닥 입성에도 성공했으나 신작부재·투자유치 실패 등으로 경영난에 빠졌다. 작년 4월 신작 ‘타임 디펜더스’마저 흥행에 실패하며 치명상을 입었다.

‘던전앤파이터의 아버지’ 허민 대표가 설립한 원더홀딩스 산하 원더피플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작년 10월 선보인 신작 ‘슈퍼피플’과 타이틀을 새 단장한 ‘슈퍼피플2’까지 부진한 성과를 거두며 경영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엔픽셀도 연초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2021년 ‘그랑사가’를 출시하며 흥행에 성공, 게임업계 사상 최단기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반열에 오르며 주목 받았으나 장기간의 신작 부재 등의 이유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쿠키런’ 개발사 데브시스터즈는 최근 팬 플랫폼 ‘마이쿠키런’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장비 반납을 요청하고 메신저를 중지시키는 등 당일 퇴사 통보를 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을 빚었다. 데브시스터즈 측은 프로젝트 인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잡음이 여전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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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위치한 엔씨소프트 사옥.   엔씨

대형 게임사도 신작 흥행 부진 등이 이어지면서 조직 축소, 게임 서비스 종료를 앞세워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엔씨소프트의 북미법인인 엔씨소프트 웨스트는 최근 전체 직원의 20%를 감축했다. 제프리 앤더슨 CEO도 사임했다. 엔씨의 자회사인 엔트리브소프트 역시 작년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넷마블에프앤씨는 자회사 메타버스월드의 게임 개발 인력을 자사로 전환배치하고, 이어 메타버스게임즈를 흡수합병했다. 크래프톤은 오는 3월부터 조직장 연봉을 동결한다. 조직장 재량에 따라 주 2회 재택 근무를 허용했던 것은 주 1회로 줄인다. 경기 침체기에 긴장감을 갖고 조직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아울러 지난 2020년 12월 출시된 PC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엘리온’을 내달 2일 서비스 종료한다. 

스마일게이트는 작년 2월 엑스박스 플랫폼에서 독점 출시한 FPS 게임 ‘크로스파이어X’ 서비스 종료 소식을 전했다. 스마일게이트 측은 “출시 후 만족할만한 완성도로 서비스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진행해왔으나 콘솔 게임 서비스에 관련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며 서비스 종료 배경을 전했다.

‘이럴 줄 알았지’ 연봉 인상 도미노가 부메랑으로… 

2년 전 대규모 연봉 인상 릴레이가 결국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본격화 되면서 게임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이에 발맞춰 공격적으로 인재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작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제한이 완화되면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 수가 줄었고, 성과가 기대치를 밑돌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스파다. 베스파는 대규모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재작년 3월 전 직원 연봉을 일괄 1200만원씩 인상했다. 당시 일괄 800만원을 인상한 넥슨과 넷마블보다 많았다. 이에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는데, 신작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결국 쓴잔을 들이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은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 “연봉 인상 릴레이는 결과적으로 게임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인건비는 올랐지만 신작 배출이 없던 탓이었다. 대형 게임사는 충격에 버틸 여력이 있었지만 중소 게임사들은 충격에 버티기 힘들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인건비 상승 릴레이 당시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호황에 잠시 눈과 귀를 애써 막았을 뿐”이라면서 “무리한 투자의 부작용일 수 있다”고 현 사태를 분석했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이 압박 강도를 높였다면서 “산업 전반에서 긴장하는 시기인 것 같다. 당분간은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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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인력 재배치냐, 해고냐. 사진은 쿠키런.   데브시스터즈

해고가 자발적 퇴사로 둔갑… ‘게임업계 관행’ 바꿔야 지적도

구조조정이 잇따르면서 게임업계의 고용 실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는 게임 개발을 위해 구성했던 프로젝트가 종료되거나 중간에 드랍(개발포기)되는 경우, 전환배치 팀에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전환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내부 채용에 실패하면 ‘권고사직’을 권하는 것이 오랜 관행처럼 통한다. 특히 중소 게임사들은 프로젝트가 사라지면 실직자 신세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데브시스터즈가 프로젝트 인력을 재배치하려고 하자, 구성원들이 일방적 해고라며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콘진원의 ‘2022 게임산업종사자 노동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계약 해지 또는 해고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7.2%였다. 사유로는 프로젝트 중단·취소 또는 종료(39.5%)가 가장 많았다. 게임 개발·서비스 주기 변화에 따른 인력 재배치 또는 사내 조직개편은 19.8%(3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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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발언 중이다.   쿠키뉴스 DB

데브시스터즈 구조조정 논란에 대해 “환장스럽다”며 분노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개선되지 않고 계속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 ‘환장스럽다’고 한 것”이라면서 “게임업계 내 권고사직 문제는 잠잠하다 싶으면 계속 생긴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은 위에서 결정하지만 책임은 아래에서 진다.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문제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자발적 퇴사가 자발적 퇴사로 둔갑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법의 허점을 악용 내지 남용하는 것이다. 데브시스터즈가 직원들의 메신저를 정지시킨 것은 해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류 의원은 “다른 곳에서도 최근 프로젝트 드랍 소식이 예정됐다는 말을 들었다”며 “게임사에서 권고사직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 일침했다.

류 의원은 8일 국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게임업계 구조조정과 관련한 대정부 질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게임 업계는 프로젝트팀을 폭파하면서 당일 권고사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며 “최근 게임사는 책임 회피를 위해 구조조정을 겸한 ‘자회사 분할’까지 시행하고 있다. 핑계는 많지만, 그냥 간접고용만 늘어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란봉투법상 노조법 2조 개정을 바탕으로 한 ‘판교 게임사 통합교섭 모델’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정식 장관은 “다양한 노동관계를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 전면 정비가 필요하다”라며 “제안에 대해 노사 주체적 노력과 정부 지원으로 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고용 시장도 양극화… 일부 게임사는 대규모 채용 진행

한편 고용 한파 속에서도 인재 확보를 이어가는 게임사도 있다. 넥슨의 자회사 넥슨게임즈는 신작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올 한 해 300여명 규모 채용을 진행한다. 위메이드는 작년 5월부터 진행 중인 인력 전입 프로그램 ‘위.인.전’을 올해에도 이어간다. 작년 5월부터 시행한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인력이 입사해 1년 이상 근무할 경우 추천한 임직원에게 최대 3000만원 포상금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입사한 직원만 100여 명이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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