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 무죄…"뇌물은 상대가 놀랄 정도로 하라"

[MZ세대를 위한 시사 漢字 이해] 알선(斡旋), 곡식이 원활하게 돌도록 하는 것
'알선수재죄', 직무를 악용해 부당 이익 얻는 '특정범죄 가중처벌죄'
조선 말기 개성 시장 노린 뇌물 사건 이후 '뇌물 원칙' 회자

기사승인 2023-02-09 1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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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의 퇴직금과 성과금 명목으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8일 곽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벌금 800만 원을 선고하고 5000만 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斡旋受財) 혐의에는 무죄선고했다. (이하 생략·출처 연합뉴스)
50억원 무죄…
곽상도 전 국회의원. 

□ 알선(斡旋)=곡식과 재물(斡) 등이 잘 돌도록(旋) 하는 행위 

알선(斡旋)은 ‘돌 알’과 ‘돌 선’을 뜻한다. 斡 자의 斗(두)는 곡식 등을 재는 분량 단위의 말을 의미한다. 따라서 斡 자의 획 사람(人)이 곡식(斗)을 관리(龺)한다는 얘기가 된다. 旋 자는 어느 방향(方)으로 돌려 이뤄지도록(疋=짝 필) 한다는 글자다.

따라서 순수한 의미의 斡旋은 ‘남의 일이 잘되도록 마련해 준다’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 사고의 지혜인가.
50억원 무죄…
조선 말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엄 귀비. 고종의 셋째 아들 영친왕을 출산한다.

그런데 이 말(斗) 즉 곡식 등의 재물 알선을 이유로 불법하게 받는 것이 수재죄(受財罪)이다. 도둑이 훔친 물건을 취득, 양여, 운반, 보관하거나 알선함으로 성립하는 범죄는 장물죄(贓物罪)라고 한다.

1897년 음력 9월 17일 대한제국이 성립되고 이런 말이 돌았다.

“뇌물은 상대가 놀랄 정도로 하라.”

대한제국 선포 9일 만에 ‘엄 상궁’이 셋째 아들 은(영친왕)을 낳았는데 이 새로운 권력 실세 엄 상궁 측에 줄을 대려는 모리배들이 설쳤다. 그중 경상도 김천의 ‘고부 댁’이라는 여자가 엄 상궁 측근에 접근해 뇌물을 바쳤는데 당시로선 그 규모가 상상 불허였다. 고부 댁은 단계 단계 뇌물을 뿌리며 엄 상궁에까지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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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관매직으로 망국에 이르렀던 조선. 1930년대 일제에 의해 흥화문 주변(현 서울 새문안로)이 헐리는 모습이다. 

이 대찬 여자의 목적은 집안사람을 송경 유수, 즉 지금의 개성 시장을 매관매직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에서 한양을 감싸는 개성, 양주, 남한산성, 강화 유수는 수천수만 냥의 뇌물을 주고도 얻기만 하면 백성 수탈을 통해 본전 빼고도 남는 자리였다.

고부 댁은 엄 상궁에게 현금은 물론 영남산 세목, 별화문석, 소고기와 해물, 출산 도구 등 바리바리 싸서 바쳤다. 그러면서 엄 상궁 듣기 좋아하라고 “엄 귀인께서 득남하시는 꿈을 꾸었다”라고 아부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다. 반의 확률을 맞추었다. 

이 이야기가 장안에 퍼졌고, ‘뇌물 원칙’이 조선말을 지배했다.

“뇌물은 상대가 놀랄 정도로 하라.”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