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운동장애도 연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쿠키인터뷰]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인터뷰

기사승인 2023-03-31 06: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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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운동장애도 연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쿠키인터뷰]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여의도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A씨의 가족은 모두 천식, 아토피, 폐렴, 기관지염, 중이염, 부비동염 등을 앓고 있었다. 급기야 큰아이는 8살 때 갑자기 원형탈모가 생기더니, 2년 뒤 두 달만에 온몸의 털이 빠지는 전신탈모가 진행됐다. A씨는 “15년 전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가 지금 우리 가족의 건강을 손쓸 수 없게 망가뜨렸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간에 알려진 지 12년이 넘은 참사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호흡기계질환을 비롯해 이와 동반되는 안질환, 피부질환 등에 한해서만 건강 피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 피해자들은 탈모, 만성피로증후군, 운동장애 같은 증상도 호소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나노 크기로 폐에서 간·신장·골수 심지어는 뇌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며 “신장·간장·면역·근육 손상과 더불어 신경정신질환, 발달장애, 암, 심혈관질환, 운동장애, 에너지대사 이상 등이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릴 때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이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임 교수는 “영아 때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될 경우 천식, 폐렴을 앓은 후 크면서 호흡기 증상은 좋아져도 만성피로증후군, 운동장애로 일상 활동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2∼3시간 활동하면 피로하고 무기력감에 빠져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제대로 못 한다. 심지어 15분 정도 뛰면 다음 날 회복하지 못해 일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가습기 살균제가 신경발달장애를 유발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피해자도 많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드는 데 사용한 성분이 DNA 손상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많은 살생 화학물질이 DNA 속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면서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에너지 대사 기능이 저하돼 운동장애, 만성피로 등에 시달려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젊은 세대의 경우 얼굴은 20대인데, 세포 노화 속도를 보면 50~60대와 비슷하다”며 “젊은 나이인 데도 불구하고 여러 퇴행성질환, 노인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기에 재활치료, 질병예방 조치를 하지 않으면 만성질환 발생률과 사망률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는 피해자들의 일상을 앗아갔다. 임 교수는 “피해자 상당수는 몸이 아파 학교, 직장,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했다. 한 달에 100만원 넘는 의료비를 감당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자책감과 간병에 따른 피로로 우울증을 앓고,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는 피해자도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 68만명 ‘대형 참사’인데… 정부·기업은 뒷짐만 
 
흡입독성물질을 원료로 한 분무형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돼 2011년까지, 17년간 400여만명이 무방비로 노출된 대형 참사를 불렀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지난 2월28일 통계에 따르면 사망자는 1810명, 피해자는 7822명에 달한다.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집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건강이 악화된 피해자는 약 67만명, 사망자는 약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가해자들의 말을 믿었을 뿐이다. 피해자들은 ‘인체에 안전하며,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라는 광고 문구와 정부 인증 ‘KC 마크’를 보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참사 책임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조정위)는 지난해 3월 사망자의 연령에 따라 유족 지원금 2~4억원을 지급하고, 증상이 심각한 초고도 피해자에게는 연령에 따라 8392만원(84세)~5억3522만원(1세)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생존자들이 평생 짊어질 고통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에도 가해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은 조정안을 거부했다.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임 교수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라며 “정부가 독성 영향과 건강 피해를 밝히고 가해 기업에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습기 피해질환에 대한 인정 폭을 넓히고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까지 개정했음에도 여전히 역학적 상관관계, 엄격한 의학적 인과관계를 고집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정부가 피해 보상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 교수는 “피해자들의 건강 피해가 큰 만큼 국가가 책임지고 환자의 미래 의료비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의료보호 환자로 지정해 의료비 본인부담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는 특정 정부의 몫이 아니며 어느 정부든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새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참사의 매듭을 지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쿠키뉴스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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