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6)

고갱의 작품에 나타나는 상상과 실재

입력 2024-01-11 10: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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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6)
폴 고갱, ‘기쁨, 아레아레아Arearea’, 1892, 캔버스에 유채, 94x75cm, 오르세 미술관

이 그림은 상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고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인간에게 ‘상상’하는 행위와 ‘지각’하는 행위는 동등한 정신 활동이고, 그 둘은 본질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상반된 의식 활동이지만, 아름다움이란 바로 상상하는 태도에서만 파악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한다. 

고갱은 주변에서 본 것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와 고대 종교 전통의 상상하는 장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이 그림 배경에서 여러 명의 여성들이 조각상을 숭배하고 있는 데 이는 고갱이 상상한 장면이다. 고갱은 작은 마오리 조각을 대불(大佛) 크기로 확대하고, 여인들이 예를 올리는 신성한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런 상상적 요소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축복받고 이상화된 폴리네시아에서 신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의 조화를 표현하고자, 고갱이 창조한 것이다. 

‘기쁨, 아레아레아’는 1893년 11월 파리에서 열린 타히티 회화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중 하나이다. 

고갱은 자신의 이국 행보를 정당화하고 싶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타히티어로 된 제목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짜증을 냈고, 빨간 개는 비웃음을 사는 등 기대했던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 내진 못했다. 

그러나 고갱은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작 중 하나라고 생각해, 1895년 유럽을 영원히 떠날 때 판매했던 그림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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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진주를 한 티이(Tii a la perle) 일명 진주를 가진 우상, 1892, 색칠하고 금박을 입힌 타마누 나무 조각상, 이마에 진주, 목에 금 목걸이, H.23.7; L.12.6; D.11.4cm

 티이(Tii)라는 이름은 에드가 드가가 주선한 1893년의 폴 뒤랑 뤼엘(Durand Ruel)갤러리 전시에서 고갱이 붙인 이름이다. ’죽은 자의 영혼이 지켜본다’를 그리고 난 뒤 고갱은 나무 조각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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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조개와 함께 있는 우상, 1892, 오르세 미술관

고갱은 주로 ‘티’라고 부르는 신들을 조각했는데, 이는 신격화된 조상의 조각을 지칭하는 타히티 말이다. 그 신들은 다양한 출처가 있는데, 특히 하와이와 이스터 섬의 해양문화 그리고 힌두와 불교의 도상학에서 비롯된다. 

그는 타히티의 목재를 다양한 재료와 결합시켰는데, 이 재료들은 ‘티’ 조각에 귀중한 가치를 더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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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골고다 곁의 자화상(Self Portrait Near Golgoda), 1896, 캔버스에 유채, 76x64cm, 상파울루 미술관

고갱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이라고 생각했기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 언덕에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고갱은 “자연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미술은 ‘추상’이다, 창조만이 신에게 접근하는 단 한가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불손함은 벗어 던지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고갱이 심장병으로 죽은 직후, 프랑스 군의관이자 작가인 빅토르 세갈렌(Victor Segale)이 타이티 마르키즈 제도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자화상이다. 

세갈렌는 이 자화상을 보고 “멀리 십자가처럼 보이는 것을 배경으로 다부진 상체를 곧게 편 모습이다, 땅딸막한 체구에 입술은 아래로 쳐져 있고 눈꺼풀은 무겁다”라고 말했다.

고갱은 인물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그는 자기 예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그의 태도가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를 고립되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강해졌다. 외톨이가 된 고갱의 관심은 종교적인 것에 쏠렸다.

그러던 그가 이 자화상에서는 기다란 콧등에 내려 앉은 매부리코와 무언가 못마땅한 듯 항상 이죽거리는 입술 그리고 짤막하게 기른 곱슬곱슬한 콧수염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듯 체념한 얼굴로 자신을 표현했다.

마네는 ‘발코니’와 ‘온실에서’에서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시선을 엇갈리게 하여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표현했다. 고갱은 눈을 아래로 뜨거나 옆으로 바라보며 서로 시선을 달리하고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인간들의 동작은 사물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그 동작의 원인으로부터 이해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겨냥하고 있는 목표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부러진 팔’이든지’ 주먹 쥔 손’과 같은 식으로 몸과 사지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총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신체 부위로서 사르트르는 일찍부터 인간의 얼굴(visage)을 주목했다. 그에게 있어서 얼굴은 시선으로 대표되고 인간의 의식이 가시화된 부위이다. 

사르트르는 1939년 ‘얼굴과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물들 가운데 얼굴이라는 어떤 존재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 얼굴은 사물처럼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은 미래가 없는데, 얼굴에는 미래가 토시처럼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시선은 반대로, 거리를 두고서 인식하기 때문에 갑자기 우주를 나타나게도 하고, 그로 인해서 또 우주로부터 빠져나가기도 한다. 얼굴의 의미란 바로 ‘눈에 보이는 초월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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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바이루마티, 1897, 캔버스에 유채, 73x93cm, 오르세 미술관

1893년 코펜하겐의 친정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던 고갱의 부인, 메테는 파리로 돌아와 다시 함께 생활하자는 고갱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워하던 고갱은 다시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안나(Annah)라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흑인 매춘부와 동거하였으나, 1894년 그녀마저 그의 집을 털어 달아났다. 

안나 때문에 다른 남자와 싸움이 벌어지고 게다가 다리의 부상으로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었던 고갱은 결국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게 된다. 

고갱은 덴마크를 떠난 후 가족은 한 번 더 만났고, 이후 편지에만 등장하지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이전에도 고갱은 상식적인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외동딸 알린이 20대 초반에 코펜하겐에서 페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알코올 중독에 빠져 미친 사람처럼 변해갔다.

딸 알린을 잃은 후부터 고갱은 심리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그래서 1892년에 그렸던 ‘바이루마티( Vairumati)’를 1897년에 다시 그리게 된다. 

한 아름다운 처녀가 신의 아내가 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타히티의 바이루마티 신화를 담았다.​​ 고갱에게는 ‘바이루마티’가 육체의 죽음 이후에 정신의 부활과 나아가 두 번째 이브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고갱은 이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대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완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고갱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과 비평이 있다. 

어쩐지 그의 작품을 대하면 어딘가 불편하고 그림에 대한 감동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그가 19세기에 살았고 20세기 초에 죽었다는 시대적인 한계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갱의 그림에 집중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원색의 색감과 이국적인 풍경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좋아하던 순순한 시절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 때문이다. 

고갱에게 삶과 예술은 하나였다. 전력을 다한 예술가의 진정성 있는 모색에서 명작이 탄생한다.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유는 그림을 제대로 읽기 위한 과정이다. 여전히 고갱의 그림은 불편하지만 매혹적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