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선 합의해야”…‘의대 증원 조정’ 타협 수순 밟을까

정부 “의대 정원 포함 모든 의제 대화의 대상”
“500명 증원 찬성”…‘의대 정원 조정’ 요구 높아져
정형선 교수 “협상한다면 1000~2000명 사이일 것”

기사승인 2024-02-27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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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선 합의해야”…‘의대 증원 조정’ 타협 수순 밟을까
서울 시내 한 병원의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등 의료계와 타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공의 집단휴진 사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의료 대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을 포함한 의제가 대화의 대상”이라며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면서도 “불법적 집단행동을 전제로 정부에 대화를 요구한다면, 2000명에서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줄 수 없다”며 “즉시 불법 상태를 풀고 대화의 장에 나와 모든 논제를 포함해 의료개혁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이 집단휴진하며 의료 공백이 발생하자,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타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 환자들의 피해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는 운영 첫날인 19일부터 23일까지 수술·입원 지연, 진료 거절 등 총 545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증원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던 의료계 일각에서도 증원 규모를 조정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26일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3~24일 성균관대 의대 교수 201명에게 의대 정원 증원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반대가 24.9%(50명), 찬성은 54.7%(110명)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증원 규모로는 350~500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500명 증원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24.9%(5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의약분업 이전 수준인 350명 증원 찬성 20.9%(42명), 1000명 증원 찬성 5%(10명), 2000명 증원 찬성 4%(8명) 등의 순이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24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2000명 증원에 너무 매달리고 있다”면서 의사·간호사 등 다양한 의료인력 추계를 결정하는 협의체를 새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소속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들은 지난달 9일 “의학 교육 질 저하를 막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막으려면 2025학년도 증원 규모는 총 350명 수준이 적절하다”며 증원 조정을 요구했다.


“500명선 합의해야”…‘의대 증원 조정’ 타협 수순 밟을까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정치권 인사들도 증원 규모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의사 출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전 조급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현재의 2000명을 고집한다면, 오히려 필수·지역의료의 생태계를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의료개혁은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타협안 중 하나로 “의대 정원 증가를 연간 500~1000명 범위 안에서 조정해 결정하고 지방의대 중심으로 증원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장 2000명을 증원하면 대학이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정부 여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의료계에선 연 400~500명 정도의 순차적 증원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한다. 정부 여당은 수용 가능한 증원 폭 논의에 당장 나서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결국 타협하지 않겠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일부러 2000명 증원을 들이밀며 파업 등 과격 반응을 유도한 후, 이를 진압하며 애초 목표인 500명 전후로 타협하는 정치쇼를 펼쳐 총선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시중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이날 “2000명 증원을 포기하고 500명 정도로 타협하자며 누군가 등장할 것이라는 제 예측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정부와 의사단체는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2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진단이 틀렸는데, 약을 몇 알 줄 건지(증원을 몇 명 할 건지) 논의한다고 하면 의사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1명도 증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 역시 증원 규모에 대한 협상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원래 필요했던 충원 규모는 3000명 내외지만, 지금 정부는 여러 요건을 고려해 2000명 정도로 생각하는 입장”이라며 “현재 추계한 2000명 자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필요한 인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증원 폭을 줄이거나 다음주로 예정된 대학별 최종 수요조사 기한을 연장할 가능성도 일축했다. 박성민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은 26일 “2000명은 돼야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응급실 뺑뺑이’ 문제나 기초 의학분야 의사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교육부에도 공식적으로 증원 신청을 연기해달라는 말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들어오더라도 ‘2000명 증원’이나 ‘3월4일 기한’을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분명히 해뒀다.

전문가는 협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2000명이 필요한 최소 인원이라고 거듭 밝혔기 때문에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면서도 “전공의가 우선 복귀한 다음 협상하자고 나온다면 정부가 움직일 순 있다. 1000~2000명 네 자릿수 사이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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