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내 경험에 디테일을 살리면 스토리다

입력 2024-05-23 22: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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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웹툰 작가의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겪은 일이 최고의 스토리다.”  23일 천안K-컬처박람회 산업컨퍼런스 토크쇼에 웹툰·드라마 ‘D.P’의 작가 김보통이 출연했다. D.P는 탈영병과 그를 잡는 군인들 얘기다.

그는 웹툰작가 지망생들에게 “거창한 걸 찾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기억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라”고 충고했다. 왜? 그렇게 쓴 이야기가 작가가 절실히 느꼈고, 가장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너무 평범하다고 다른 이가 공감하지 않을 걸로 속단하지 마라. 김 작가가 D.P를 쓰려고 할 때, 주위에서 “사람들이 가장 지겨워하는 군대 이야기를 뭣 하러 쓰냐”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군대 생활 중 느꼈던 디테일한 감정을 독자도 느끼도록 노력하며 썼다. 주인공 마음속에 들어가 “이렇게 했을거야” 상상하며 새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스토리를 짤 때마다 전개·결론을 모두 구상하진 않는다.

[조한필의 視線] 내 경험에 디테일을 살리면 스토리다
김보통 작가가 23일 천안K-컬처박람회 산업컨퍼런스에서 토크쇼를 하고 있다. 왼쪽은 대담을맡은 상명대 김병수 교수.   조한필 기자

필자도 지금 이 글의 결론을 생각하지 않고 쓰고 있다. 기사가 처음 생각과 달라지지 말란 법은 없다.

김 작가는 독립기념관 컨퍼런스룸을 메운 작가 지망생들에게 강조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써라. 개인이 대형 프로덕션과는 경쟁이 안 된다.” 또 카카오·네이버 등 대형 플렛폼 통한 데뷔를 꿈꾸며 마냥 기다리지 마라. 이런 곳에 목매지 마라. ‘좋은 작품’은 어떡하든 찾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필자도 젊은 기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지금은 지방의 소소한 언론 매체에서 기사를 쓰지만, 누군가는 네 글을 보고 있다. 일반 독자도 있지만 그 속에 너를 스카웃할 이가 숨어 있다.

김 작가의 최근 웹툰 ‘암환자’도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슬픔 속에서 탄생했다. D.P 때처럼  “우울한 소재” 라며 연재를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일이 강력한 호소력 갖는다는 신념으로 밀어 부쳤다.

웹툰을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작가는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김 작가가 23일 천안에 오기 전, 자신의 작품이 올라간 네이버 웹툰을 검색했는데 작품이 98개나 됐다. 사람들은 상위권 웹툰만 보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처음부터 웹툰 상위권을 노리면,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접게 된다. 내 이야기부터 쉽게 써보라는 얘기다.

넷플리스가 D.P를 드라마화하겠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다. 믿지 않으니 “부담감 제로”였다. 편하게 제작 미팅했다. 이런 스토리가 촬영에 들어갈까? 누가 주연을 맡으려 할까? 만들어져도 누가 볼까? 그런데 주인공은 정해인이 맡고 시청률은 쑥쑥.

김 작가 요점은 “너무 쫄지 말자”다. 필자는 60대 중반 늦은 나이에 박문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적 책 집필을 생각하고 있다. 몇 개월째 구상만 하고 있다. 박문수와 영조의 관계를 그들의 사적 부분에서 출발해 조선시대 정치사적 의미도 찾아보려 한다. 지난 몇 년간 박문수 삶의 궤적을 찾아 다녔다. 유년기를 보낸 평택 외갓집, 장년기의 공주 낙향생활 3년, 말년을 보낸 양평 양수리(정약용 생가 앞), 죽어 묻힌 천안 은석산. 토크쇼를 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박문수에게 가장 강렬한 느낌을 준 장소는 어딜까.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김 작가는 일본 웹툰·드라마 ‘심야식당’ 작가 아베 야로(安倍 夜郞)를 좋아했다. 식당이란 친숙한 장소에서 주인이 고객의 인생을 살피며 토닥거린다. 드라마 ‘모범택시’도 익숙한 택시에서 운전사가 승객 고민을 듣고 해결해준다.

그렇다. 스토리는 독자에게 친숙한 소재·장소로 출발해 디테일로 풀어가야 한다.

/천안·아산 선임기자 chohp1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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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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