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봉석 화백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MBC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토일 오후 9시45분)에서 송일국(39)은 불가능이 없는 사나이다. 송일국이 맡은 최강타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세계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완벽한 남자다.
6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송일국을 만났다. 브라운관에서는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시대의 영웅’은 실제 현실에서는 고된 촬영과 박한 평가에 지쳐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이틀 밤을 새서 정신이 없다. 어제 계속 매 맞다가 와서 머리가 얼얼하다”고 입을 열었다.
“최강타와 닮은 점이요? 없어요. 그저 최강타는 누가 봐도 완벽하고 멋진 남자니까 욕심이 났어요. ‘주몽’ ‘로비스트’ ‘바람의 나라’ 등 지금까지는 제가 선택됐다면, 이 작품은 제가 하고 싶어서 뛰어들었어요. 1년간 최강타만 생각하며 살았지요.”
닭 벼슬과 같은 머리, 검은색이 지배적인 의상 등 ‘최강타 스타일’은 송일국의 작품이다. 그는 작은 소품까지 신경 쓰며 드라마에 애정을 쏟았다. 철저한 몸 관리로 매끈한 말근육을 드러냈고, 펜싱 승마 검술 등을 익히며 최강타를 재연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초반부터 어설픈 스토리와 시대에 뒤떨어진 설정으로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송일국은 억울한 듯 쏟아냈다.
“차라리 이게 영화였다면 제가 의도한대로 나왔을 거예요. 영화처럼 120분 안에 다 보여줬어야 했는데…. 드라마의 특성을 간과했어요. 24회 내내 폼만 잡다가 끝날 수 없잖아요. 드라마에서는 인물의 내면이 중요하지요. 인간이 보여야 하는데 너무 만화 속 이미지에만 빠져서 인간을 놓쳤어요.”
최강타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눈빛에는 힘이 가득했다. 어색한 영어와 부자연스런 한국말을 섞어쓰는 최강타를 향해 시청자들은 유치하고 부담스럽다고 악평을 했다.
“1∼4회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제 모습이 마치 비주얼은 좋은데 부자연스러운 신인 모델 같더군요. 마네킹과 같은…. ‘애정의 조건(2004)’ 이후에 모니터 하면서 방송에 나온 제 모습을 보기 싫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신불사’는 저조차도 불편해서 TV를 끄게 됐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 연기에 자만심이 있었구나, 깊이 반성했습니다.”
엉성한 CG(컴퓨터 그래픽)와 조악한 세트의 문제점도 노출됐다. 100억원이 투입된 초대형블록버스터에 대한 기대를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요트가 폭발할 때 티가 나는 CG나 보일러실을 연상시키는 최강타의 기지 등은 드라마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제 머릿속에 ‘신불사’는 영화 ‘아이언맨’ 수준의 그래픽이 나와야 했어요. ‘아이언맨’의 화면 품질을 100으로 치면, 열악한 한국 드라마 환경이지만 스텝들의 노력으로 50까지는 나오겠지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더군요. 내가 봐도 너무 이상했어요. 차라리 CG를 뺀 게 나았을 텐데 너무 안타까워요.”
송일국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다했다. 특수효과를 낼 여력이 안돼 직접 물속에서 피를 뿌렸고, 액션신을 촬영하다가 오른손을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사는 연기자들의 임금을 체불해 촬영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희소식은 4월부터 시청률이 오르면서 이제 20%를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는 점. 복수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최강타의 모습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중반부터 작가 선생님이랑 상의해서 인간 최강타를 부각하는 쪽으로 선회했어요. 그랬더니 요즘은 다들 재미있다고, 다른 드라마는 용두사미로 끝나는데 우리는 대기만성이라고 칭찬이 많아요.”
앞으로 남은 분량은 6회. 1년간 최강타로 살아온 그는 캐릭터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배웠어요. 대작치고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제 자존심을 짓밟을 정도는 아니에요. 가장 큰 수확은 역시 배우의 기본은 연기라는 것,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 표현이 생명임을 깨달았어요. 잊고 지낸 ‘기본’을 새삼 떠올리게 됐지요.”
드라마 종영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연극준비에 들어가는 이유도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안중근 부자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로 송일국은 안중근 선생과 그 아들인 1인 2역을 맡는다.
“윤석화 선배가 예전부터 제안을 했는데, ‘신불사’를 통해서 출연 결심을 굳혔어요. 드라마가 감독 예술이라면 연극이야말로 진정한 배우 예술이지요. 관객들에게 저의 연기를 오롯이 전달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