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누구나 HIV 검사하고 치료받는 환경 조성돼야

/ 기사승인 : 2016-12-19 09: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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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

[쿠키 건강칼럼] HIV 감염인의 사망률은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세 가지 종류의 약을 동시에 사용하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AART)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20세기의 흑사병', '불치병', '천형'으로 불리던 HIV가 이제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이 꾸준한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변화된 것이다. 게다가 약국과 온라인을 통해 진단 키트를 구매할 수 있어 이제 누구나 타인에 대한 노출 위험 없이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HIV 감염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2013년 이후 매년 HIV 신규 감염인은 1000명을 넘어서고 있고, 누적 생존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 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신규 환자의 약 76.2%는 20~40대의 젊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어 환자들의 평균 치료 기간도 그만큼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HIV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모로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얼마 전 에이즈 예방 정책 변화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과거 HIV 감염인을 조속히 발견해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파 ·확산을 방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HIV 감염 고위험군에게 적극적인 예방법들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 및 국제기구에서도 UN이 내세운 '2030년까지 에이즈를 전 세계에서 완전히 퇴치한다'는 목표아래 새로운 감염인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세계보건기구(WHO)도 HIV 감염위험이 높은 비감염인들이 치료제를 복용하는 노출 전 예방요법(PrEP)을 포함한 적극적인 HIV 예방책 도입을 권고할 정도다.

그러나 HIV가 발견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HIV를 죽음의병, 동성애자들의 질환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편견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2년에 모든 HIV 감염인에게 치료제 복용을 권고하는 정책을 도입한 바 있는 미국에서도 효과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HIV 감염인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HIV 검사를 받으면 그 결과를 다른 사람이 알게 되지는 않을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과정에 아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지, 그리고 HIV 치료제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이 알게 되지는 않을지 등 비의학적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질병부담연구(GBD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치료비의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우리나라도 HIV 감염인 100명당 항레트로바이러스 평균 치료율은 39%에 그쳤다. 

WHO는 지난해 증상이나 면역기능에 관계없이 모든 HIV 감염인에게 치료제 복용을 권고하는 이른바 'Treat all' 정책도 받아들였다. 이는 HIV 감염인에서 조기치료의 장점이 증명되고 있으며, 아울러 치료가 곧 다른 사람으로의 전염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추어 준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예방 방법인 백신의 개발가능성이 희박하고 완치적 치료법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감염인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 졌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더불어 PrEP을 포함한 적극적인 예방책들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HIV 감염인이 평생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감염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감염인들이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HIV 감염인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무엇보다도 그런 시각들이 감염인들이 검사 받고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우리사회 누군가가 새로운 HIV 감염인이 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HIV 감염인들이 검사를 받고 치료제를 복용하는 과정들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누군가가 HIV에 감염되는 위험을 줄이는 과정이라고 여겨진다면 분명 우리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HIV 감염인 스스로도 조기 치료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고, 고위험군 역시 적극적인 예방책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HIV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모두가 바라는 '2030년 에이즈 종식' 달성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