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하얀 피부의 여자를 만났을 때

하얀 피부의 여자를 만났을 때

기사승인 2020-12-09 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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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하얀 피부의 여자를 만났을 때
▲사진=유튜브 내에서 방영한 해당 광고 영상 캡처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세 명의 남성 그리고 한 여성이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어깨가 드러난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남성들을 등지고 문을 향해 섰네요. 남성들의 시선은 일제히 여성에게 쏠립니다. 승강기가 움직이는 동안 본인의 입을 틀어막고 좋아하던 남성은 여성이 내리자 탄성을 쏟아냅니다.

“봤어? 봤어? 딱 내 이상형. 내가 말했잖아. 하얀 여자 너무 예쁘지 않냐”

“나도 반할 뻔했다니까”

“완전 성스러워 보이는 게 천사인 줄 알았잖아”

여성에 대해 한창 떠들던 남성들의 머리 위로 광고 문구가 떠오릅니다. ‘남자들이 반한 하얀 피부톤의 비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이 무슨 어이없는 제목인가’하는 생각으로 기사를 클릭했을 여러분. 쿡기자 역시 해당 광고를 보고 ‘기사를 써야 하는가’ 며칠 고민했습니다.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는 한 마케팅 방법처럼, 기사가 도리어 제품의 홍보 수단이 될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장고 끝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더는 이러한 광고가 나와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엉망일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보통 이런 경우에는 입을 떼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회는 반성과 성찰을 할 때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피부색이 미의 기준일 때가 있었습니다. 자고로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져야 미인이라 불릴 수 있었죠. 일본에는 ‘하얀 피부는 일곱 가지 결점을 가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중세유럽에서는 흰 피부를 위해 수은을 발랐다고 하고요. 한낱 피부색에 얼마나 많은 이가 열광했을지, 또 얼마나 많은 이가 부질없는 노력에 눈물 흘렸을지 가늠이 안 됩니다.

남성의 평가가 여성의 소비 척도로 쓰일 때도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제품을 사는 확연한 소비 형태가 있었습니다. 특히 외모를 꾸미는 제품 등에서 행동이 두드러졌고, 그러한 의도의 마케팅도 만연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흰 피부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기호일 뿐 더는 미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물건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었죠.

해당 영상이 하나의 광고로서 의미를 다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의 외모를 두고 품평하는 행위는 무례하고 몰상식합니다. 또 그 시선을 성과 관련된 언동으로 이용하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고요. 이러한 광고를 불특정 다수가 여과 없이 본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큽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고요. 여성은 남성을 위해 소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성 역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이러한 광고에 동조할 시대는 갔고, 우리의 상식도 더이상 무지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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