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맞지만 법 적용 안 돼” 사각지대서 우는 노동자

이소연 / 기사승인 : 2021-02-22 17: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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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문희씨 동료와 유족의 문자 대화 내용. 직장갑질 119 제공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직장에서 모욕적 언사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파주 캐디 사망 사건’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이기에 가해자 처벌은 요원하다. 

21일 시민사회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공문을 통해 캐디 고(故) 배문희씨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단서가 붙었다. 고용노동부는 “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의 직접적인 적용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고 배문희씨가 어머니에게 전한 카카오톡 대화내용. 직장갑질 119 제공
고 배씨는 지난 2019년 7월 경기 파주시 법원읍의 한 골프장에 캐디로 입사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수고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골프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일하게 됐다.  

고 배씨는 입사 후 가해자인 ‘캡틴’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캡틴은 골프장에서 일하는 100여명의 캐디를 지휘하는 책임자다. 캡틴은 고 배씨에게 “너 때문에 뒷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그러니까 살찌는 거다” “어디서 말대답이냐” 등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망신을 줬다. 고통을 호소하던 고 배씨는 같은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노동부는 고 배씨 관련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사용자에 대한 조사 및 시정지시를 했다. 그러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골프장 측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갑질 119는 “고용노동부가 배씨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이상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아도 가해자인 캡틴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아도 현행법상 정부가 이를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설문조사. 직장갑질 119 제공
‘직장 갑질’이 맞지만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장 친인척, 원청회사, 아파트 주민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처벌 조항도 없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3%는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관계인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답했다.  

제조 회사에 아웃소싱 용역으로 일했던 한 하청 노동자는 “원청회사 반장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특근을 못 하겠다고 하자 화를 내면서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원청회사 임원에게 괴롭힘 사실을 알리자 같이 일하기 어렵다며 해고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7월부터 사용자·근로자가 직장 지위나 관계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시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사각지대는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간접고용·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포함,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현재 국회에는 특수관계인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상정됐다.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