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더는 희망을 노래하지 말아요

기사승인 2021-03-10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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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더는 희망을 노래하지 말아요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LH 땅투기 임직원들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5만원에 해당하는 재화를 생각해볼까요. 꽃 한 다발, 책 세 권, 텀블러 하나, 배달 음식 한번. 물론 5만원을 주고 나열한 전부를 살 수 없습니다. 각각의 의미죠. 많은 것을 살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살 수 없는 이 돈을 아끼려 누군가는 인간다운 삶을 포기합니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 손바닥 두 개 크기만 한 미세기 창이 그것입니다.

‘창문 하나 없는 게 뭐. 공기야 밖에 나가 쐬면 되는 거고’ 십여 년 전, 혼자 서울 생활을 시작한 20대 쿡기자도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5만원이라도 절약해 보겠다며 포기한 게 시원한 공기뿐이라고 착각한 겁니다. 날이 흐린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었고 어느 날은 낮, 밤조차 가늠 되지 않았습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비좁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 ‘이게 사는 것인가’ 자문하는 밤이 늘었습니다. 쿡기자의 옆방 그리고 윗방 청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잠 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기 옆에 싱크대를 설치한 화장실, 다락방에 사다리를 두고 복층이라 소개한 주택. 베란다에 세탁기와 냉장고를 넣고 분리형 원룸이라 우기는 방.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황당한 사진들이 우스갯거리로 소비되는 동안 어떤 청년은 열악한 환경의 주택을 전전하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꿨을 겁니다. 미래에는 작지만 아늑한 보금자리를 가질 희망 말이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개발 예정지 투기 의혹에 특히 2030 세대가 좌절한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국내 전체 가구 주거빈곤율은 줄어들고 있지만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끌’과 ‘빚투’로 집을 얻는 청년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극히 일부의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많은 청년이 5만원이라도 아끼겠다며 고시원 창문을 포기하고, 사다리 복층 집에 들어가 월세를 냅니다. 주거 양극화를 해소, 청년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기성세대의 외침이 이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땀보다 땅’임을 확신하게 해준 어른들의 걱정은 위로보다 조롱에 가깝습니다. 정직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꿈이 ‘공공임대’ 된 세상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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