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유흥 아닌 문화…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콘서트 잔혹사②]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03-13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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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롤링홀에서 공연하는 록밴드 노브레인.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생각해보니, 여러 공연장을 돌아다니면서 쌓은 즐거움과 양식 덕분에 이 노래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래를 계속 만들 수 있게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록밴드 노브레인의 기타리스트 정민준이 말했다. 멤버들이 ‘한 밤의 뮤직’ 연주를 시작하자,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짝’ ‘짝’ ‘짝’이라고 채팅을 남기며 ‘랜선 박수’를 보냈다.

지난 11일 서울 어울마당로 롤링홀에서 열린 노브레인의 공연. 팬데믹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공연장엔 간만에 활기가 돌았다. 지난 8일 개막한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캠페인 덕분이다. 무대에 오른 노브레인은 40분간 9곡을 부르며 모니터 너머로 열기를 전했다. 가슴이 뜨거워진 건 가수와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롤링홀을 운영하는 김천성 대표는 최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공연장과 상생을 도모해준 음악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불씨를 댕긴 건 록밴드 해리빅버튼의 멤버 이성수였다. 홍대 인근을 지키던 라이브 클럽들이 하나 둘 스러지는 것을 보며 그는 시름에 잠겼다. 그에게 무대를 잃는다는 건 집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도, 음악인과 관객은 돌아갈 곳이 없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침 미국에서 벌어진 ‘#세이브 아워 스테이지스’(#SaveOurStages) 캠페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로 존폐 위기에 처한 독립 공연장을 돕기 위한 운동으로, 유명인과 정치인이 참여해 긴급 구호금 150억 달러를 확보했다.

이성수는 음악 애호가로 소문난 윤종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미국 사례를 들며 국내 공연장들을 지원할 제도가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기는 윤 변호사도 마찬가지. 그는 SNS에 소규모 공연장의 현실을 알리며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적었다. 그러자 온라인 공연 송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온라인 플랫폼을 무상으로 제공해드릴 테니, 우리가 직접 공연을 만들어봅시다.” 소식을 들은 이성수는 곧바로 아티스트 섭외에 나섰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캠페인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캠페인 포스터.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캠페인은 홍대 인근 5개 공연장(롤링홀, 프리즘홀, 웨스트브릿지, 드림홀, 라디오가가)에서 뮤지션 67팀 참여로 14일까지 이어진다. 노브레인·갤럭시 익스프레스·레이지본·잔나비 록밴드는 물론이고, 가리온·다이나믹 듀오·피타입 같은 힙합 뮤지션들도 무대에 올랐다. 입장권 판매와 민간 후원으로 얻은 수익금은 공연장 대관료와 스태프·아티스트 인건비, 인디 음악 생태계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 입장권 판매 금액은 12일 1차 목표였던 5000만원을 돌파했다. Mnet·멜론·벅스·소리바다 등 방송사와 음원 플랫폼 업체들도 홍보와 광고 후원으로 힘을 보탰다. ‘무엇이든 시켜만 달라’며 자원봉사자를 자처한 이들도 많았다. 

이성수는 “진심이 통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흔히 ‘홍대’라고 하면 ‘록밴드’를 떠올리지만, 언더그라운드 힙합 문화가 만들어진 곳도 홍대에요. 이번 캠페인 취지에 공감한 힙합 뮤지션들도 많이 참여해줬어요.”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홍대 문화’는 다양성을 지키는 근간이 됐다. 가지각색의 개성을 지닌 신인 뮤지션이 이곳에서 성장해서다. 이성수는 “대형 기획사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하는 뮤지션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작은 무대에서 실력을 쌓고 팬들을 만들어가며 성장한다”라고 강조했다. 11일 라디오가가에서 공연한 펑크 밴드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은 “다양한 관점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어러분이 누리는 재미의 지평도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어울마당로에 자리한 롤링홀 내부.
민간의 지원만큼이나 정책적 구호도 필요하다. 앞서 홍대 라이브공연장 대표들은 ‘한국대중음악공연장협회’를 조직하고, 공연업계의 생존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과 지원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갈 길은 멀다. 지난달 27일, 음식점으로 등록된 공연장 세 곳에서 공연이 개최 직전 취소되거나 도중에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시 고시에 따른 조처였지만 업계에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지침’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됐다. 윤 변호사는 “인디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문화 생태계에 관심이 적은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작은 공연장과 그곳에서 공연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형성한 문화 생태계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끌어내는 게 이번 캠페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성수는 “공연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문화예술이자 누군가에겐 생계수단”이라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노브레인 공연 캡처. 사단법인 코다, 롤링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