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여고추리반’ 정종연 PD의 ‘영웅론’

기사승인 2021-04-07 0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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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여고추리반’ 정종연 PD의 ‘영웅론’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 촬영 사진.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2019년 6월28일 부산의 한 내리막길에 주차된 승합차. 운전자가 앞바퀴에 괴어둔 버팀목을 빼내고 차에 타려던 순간, 차가 아래로 밀리기 시작했다. 운전자는 차를 멈춰보려 했지만, 순식간에 다리가 바퀴 아래로 깔리고 말았다.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 그 때 근처에서 버스 한 대가 멈추더니, 여고생 다섯 명이 내려 승합차 쪽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휴대폰과 가방을 내팽개친 채 차체 뒤쪽을 받치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절박한 목소리가 마음을 움직인 걸까. 근처 시민들이 몰려와 차량 앞바퀴를 들어올렸다. 운전자는 사고 발생 6분 여 만에 구조됐다.

tvN ‘더 지니어스’·‘대탈출’ 시리즈 등을 만든 정종연 PD는 뉴스로 접한 이 사건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고 한다. ‘여고생 어벤저스’로 불린 다섯 학생들과 시민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대단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선한 마음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오히려 ‘연약한 존재’로 여겨지는 ‘여고생’들이 그런 행동을 두려움 없이 했다는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런 그림이 좋았어요.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게 되고, 단지 선한 마음과 의지만으로 영웅이 되는 사람들이요.” 최근 쿠키뉴스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정 PD가 들려준 얘기다.

[쿠키인터뷰] ‘여고추리반’ 정종연 PD의 ‘영웅론’
‘여고추리반’ 포스터.
정 PD가 만든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은 그의 ‘영웅론’을 보여주는 예능이다. 새라여고 추리반에 입단한 박지윤·장도연·재재·비비·최예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맞닥뜨리고 진실을 파헤친다. 죽거나 사라지는 학생들, 수상한 선생님들, 믿을 수 없는 경찰들 사이에서 다섯 주인공은 공포와 배신감에 떨지언정, 결코 사건 해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뛰어난 신체 능력이나 지력 없이도, ‘누구도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새라여고 학생들을 지켜낸다. “연약한 존재로 여겨지는 여고생들”이 부패한 어른의 권위에 맞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재미를 넘어 쾌감을 안기기까지 한다.

“추리반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적극적인 액션(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싱겁게 끝낼 수도 없었어요. 모든 추리가 끝난 후에도 추리반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이 아주 제한적이었죠. 그런 개연성에 관한 어려움이 출연자의 입을 통해서 나온 장면이 있어요. 비비가 ‘(어른들 없이)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고 말한 장면이었죠. 제작진이 가장 걱정하고 심사숙고한 부분이었데, 비비가 그 고민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리얼리티도 더욱 살아났고요.”

추리반 학생들의 힘은 ‘연대’에서 나왔다. 내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정 PD는 “출연자들이 빨리 친해지기만을 바랐다. 출연진 전원의 ‘케미’(궁합)가 중요했기 때문”이라면서 “첫 녹화 때부터 친밀감이 빠르게 형성돼 다행스러웠다”고 말했다. 탄탄한 팀워크는 제작진도 놀랄 만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나애리의 휴대전화를 발견한 추리반이 동아리실에 모여 사건 전말을 추리하는 장면에선, 제작진이 감탄을 터뜨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 PD는 “이후 동아리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출연자들 반응이 극적으로 나오려면, 그 추리의 정확성이 꽤 중요했다. (추리가 잘 맞아떨어져서) 내심 기뻤다”고 돌아봤다.

[쿠키인터뷰] ‘여고추리반’ 정종연 PD의 ‘영웅론’
정종연 PD
‘대탈출’ 시리즈로 ‘추리 예능’을 개척한 정 PD는 ‘여고추리반’에서 미니시리즈 형식에 도전하며 또 한 번 예능 지평을 넓혔다.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참신하면서도 흡인력을 높였다. 이런 아이디어는 ‘대탈출’을 연출하면서 얻었다. 정 PD는 ‘‘대탈출’이 점점 이야기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뒤집어 ‘이야기에 집중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를 상상하며 ‘여고추리반’을 기획했다. 프로그램 배경이 된 새라여고는 충남 홍성군에 있는 한 폐학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약 3주에 걸쳐 시계탑, 심화학습동, 지하벙커 등 세트장을 지었고,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세트를 추가하거나 수정했다고 한다.

첫 시즌을 마무리한 ‘여고추리반’은 지금 멤버 그대로 시즌2로 돌아온다. 방송 8회 만에 ‘대탈출3’ VOD 시청자 수를 넘긴데다가, 티빙 유료 시청자 증가에도 크게 기여한 덕분이다. 정PD는 “플랫폼에 들어오게 만드는 콘텐츠가 있고, 그곳에 머물게 만드는 콘텐츠가 있다. 제 콘텐츠는 전자에 해당한다고 티빙은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선 ‘여고추리반’이 ‘대탈출’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추측도 나온다. ‘머리가 좋아지는 녹색 알약’이 두 프로그램 모두에서 언급된다는 이유에서다. 정 PD의 속셈은 뭘까. 직접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뭔가를 암시하는 떡밥이 있다면, 제가 특별히 거들지 않더라도 시청자 여러분들이 알아서 잘 찾아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티빙 제공.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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