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빅매치’ 슈퍼리그, 유럽은 왜 반대할까?

문대찬 / 기사승인 : 2021-04-21 06:00:24
- + 인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FC의 한 팬이 슈퍼리그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유로피언 슈퍼리그(ESL)’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지난 18일(현지시간) ESL은 공식 성명을 통해 새로운 주중 대회인 슈퍼리그 출범을 선언했다. ESL은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내로라하는 유럽의 12개 빅클럽이 모여 만든 그들만의 리그다. 여기에 3팀을 추가하고 해마다 5팀을 선정해 총 20개 팀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명문 클럽간의 맞대결을 평상시에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ESL을 향한 국내 축구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하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슈퍼리그가 중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관련 홍보 영상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는 등 한껏 들뜬 모양새다. 반면 ESL을 바라보는 현지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유고브(YouGov) 여론조사에서 축구팬의 79%가 슈퍼리그 창설에 반대했으며, 14%만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51%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이탈한 클럽들이 퇴출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SL에 참가한 12개 빅클럽. 더 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유럽 스포츠 시스템과 북미 스포츠 시스템의 구조적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이 현지의 강한 반발을 부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스포츠의 대표 종목인 축구는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두루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을 대표하는 수많은 팀을 만들고, 승강제를 도입해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감동적인 드라마도 연출된다. 레스터시티가 2016년 창단 132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우승한 것이 일례다. 부목 공장 짐꾼 출신이자 8부 리그 출신 선수 제이미 바디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장면은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구조는 한편으로 빅클럽의 불만을 자아낸다. UEFA와 리그가 운영하는 대회를 이끌어가는 건 그들인데, 중소 클럽과의 수익 분배 때문에 원하는 수준의 수익을 얻기가 힘들다. 축구 발전이라는 공공의 목표 하에 희생하는 부분이 결코 적지 않다. 
북미의 대표 스포츠 리그인 NBA. AP 연합뉴스

 

반면 북미 스포츠는 클럽과 각 구단이 수익의 주체가 된다. 거대 자본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한 북미 스포츠는 폐쇄적으로 리그를 운영한다. 팀 창단도 어렵고 리그에 가입하는 것도 어렵지만, 제도권에 진입만 하면 막대한 수익과 권한이 주어진다. 승강제가 없어 ‘탱킹(정규리그 하위권 팀이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는 것을 노려 경기에서 고의로 지는 경우)’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균등하게 높은 질적 수준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낮은 수준의 매치업이 적다보니 관심도가 높아지고 거대 스폰서와 투자자금이 자연스레 리그로 몰린다. 유럽 축구가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익 규모면에서 북미 스포츠를 뛰어 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북미 시스템을 도입한 ESL은 공개된 규모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첫 해 총상금만 100억 유로(약 13조3600억원)에 달하고, 가입한 초대 멤버들에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지원금 명목으로 35억 유로(약 4조6782억원)를 지급한다. 초대 멤버는 모든 경기에서 패해도 매해 최소 1억3000만 파운드(약 2005억원)가 보장된다. 유럽 축구 최고의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의 규모를 훌쩍 뛰어 넘는다. 2019-2020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상금은 1900만 유로(약 254억원)에 불과하다.

막대한 수익 분배 배경에는 미국 뉴욕의 대형 투자은행인 JP모건사가 있다. JP모건은 ESL 출범 및 운영을 위해 약 40억달러(약 4조4000억원)이상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미국 딜로이트에 따르면 슈퍼리그에 참가하기로 한 12개 구단 모두 코로나 19로 인해 지난해 매출이 감소했다. 슈퍼리그가 출범하면 강팀들끼리 맞붙는 경기가 늘어나 자연스레 중계권료 등 수익 증가가 기대된다. 협회나 하위권 팀들과 나누던 수익을 가입 구단끼리만 나눌 수 있어 분배금도 늘어난다. 12개 빅클럽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ESL 창단을 강행한 이유다.

2015-2016 EPL 우승을 차지하며 한 편의 동화를 썼던 레스터시티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유럽 스포츠계의 전반적인 정서에 반한다는 것이 문제다.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ESL 출범 소식을 접한 뒤 “슈퍼리그는 유럽 축구의 70년 역사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축구는 100년 가까이 리그와 대륙 내 경쟁, 글로벌 대회를 치르면서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 해 왔다. 이에 대한 관계자 및 팬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일부 팀에게만 특권을 쥐어주는 슈퍼리그의 방향성과는 궤가 다르다. 이러한 가치 속에서 선수 생활을 한 슈퍼스타들은 입을 모아 “ESL이 축구를 훼손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ESL 출범은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여타 대회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등 축구계 지형도를 바꾸는 것을 떠나, 지난 수백 년간 이어온 유럽 축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인 셈이다.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