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내 방구석,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서울 도심에서 투발루 구하기 ‘투발루 프로젝트-섬:시티’

기사승인 2021-04-24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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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서울시 용산구 어딘가에 위치한 내 자취방. 에어컨과 전기장판으로 연중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한다. 평화로운 토요일, 늦잠을 자던 중 발 끝에 축축함이 느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냉장고와 쌀통은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비상상황을 종식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생각해내 도전할 것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서는 주기적으로 바닷물이 집 안까지 들이친다. 바닷물의 소금기가 농작물의 씨를 말리고 가축을 앗아간다. 날씨는 계속해서 더워진다.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 감지하기 어렵다. 다 같이 나서면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지만, 현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구에는 기후위기 대책이 절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강주현 그래픽디자이너와 강현석 건축가는 우리의 일상 공간과 투발루를 연결지을 기회를 마련했다.

이들은 ‘투발루 프로젝트-섬:시티’를 기획, 평범한 시민들과 투발루의 위기에 대응할 건축적·정책적 기술을 찾아 모았다. 이후 시민들이 발견한 기술을 각자의 생활공간에 적용하는 상상을 했다. 기술 정보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아카이브로 만들었다. 아카이브는 투발루에 대한 정보를 담은 팩트북, 투발루의 모습을 담은 포토북, 투발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정보를 담은 시나리오북 등 3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21일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강주현 디자이너와 강현석 건축가를 만나 투발루와 우리나라를 오가는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엿봤다. 강주현 디자이너는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겸임교수로, 강현석 건축가는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안락한 내 방구석,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투발루의 수도섬 푸나푸티 주민들의 가옥. 사진=강현석 건축가, 투발루 프로젝트 아카이브 tvpr.tv

투발루가 직면한 환경·사회 위기

강현석 건축가는 지난 2011년 투발루에 직접 방문해 현지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투발루의 위기를 기후위기와 내부위기 등 두 부류로 구분했다.

외부 요인인 기후위기는 해수면 상승이 대표적이다. 투발루의 국토는 9개 섬으로 구성된다. 해수면으로부터 국토의 평균 높이는 4.5m 이하다. 인구 대부분은 해수면으로부터 2m 위에 살고 있다. 언덕이나 산이 없어 대피처도 마땅치 않다. 연 1~2회 ‘킹타이드’(매우 높은 파도)가 몰려와 섬 전체가 물에 잠긴다. 바닷물의 영향으로 토양은 식물과 농작물 경작이 어려운 상태다.

땅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물도 위기를 더한다. 투발루는 화산 폭발의 부산물로 생겨난 산호섬이다. 빈틈이 많은 다공성 지형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땅 속으로 스며든다. 물이 지표면으로 올라와 고여있는 모습도 나타난다. 

내부위기는 경제적 빈곤에서 발생한다. 정부 수입원이 빈약하다는 문제점이 대표적이다. 투발루 정부의 가장 큰 수입원은 다른 나라의 원조다.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다른나라 어부들이 어업할 수 있도록 권리 대여해주며 수익을 얻기도 한다. 인터넷 도메인 ‘tv’를 해외의 미디어 회사들에게 대여해주는 사업에서도 수익이 나온다. 2000년도 투발루 정부의 총 수입 과반은 도메인 대여 사업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이들 모두 투발루 정부와 국민들이 직접 부가가치를 생산해 얻는 수익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조와 대여업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취약한 수입원이다.

국민들의 일자리도 충분치 않다. 투발루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직장에서 일한다. 공공기관이나 마을회관 업무를 보거나,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등의 직업을 가진다. 정부 수입원이 불안정한데, 국민들의 생계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투발루의 인구구조는 청년 인구가 다수인 피라미드 형태다. 수적으로 많은 젊은 세대에게 공급할 직업은 부족한 실정이다. 

식량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투발루 국민들의 주요 식량은 해외에서 수입한 가공식품이다. 가공식품 외 다른 식품 선택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비만을 비롯한 건강 이상이 나타난다. 쓰레기 처리 시설이 없지만, 가공식품 포장지로 인해 쓰레기 배출량은 줄지 않는다. 쓰레기를 태우며 발생하는 공해가 거주지와 가까운 바닷물을 오염시킨다.

안락한 내 방구석,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강주현 그래픽디자이너(왼쪽)와 강현석 건축가(오른쪽). 사진=제로의 예술 웨비나 캡처

위기의 투발루, 구해 낼 아이디어는?

강현석 건축가가 탐색한 투발루의 위기를 접한 시민들은 각자 대책을 찾아 나섰다. 책, 논문, 인터넷을 뒤져 다양한 기술 정보를 수집, 아카이브에 축적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문지식 없이도 수십가지 기술 정보를 검색해내 아카이브에 정리해 담았다.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땅을 지킬 대책으로는 방조제 기술이 꼽혔다. 투발루 섬의 주변으로 방조제를 쳐 외부로부터 섬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막는다는 구상이다. 해변의 경사를 높이는 ‘해빈’을 도입한다는 아이디어도 덧붙였다.

경작지 확보와 식량 안보를 타개할 방안으로는 화분 경작이 제시됐다. 대형 화분을 제작해, 그 속에서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상상이다. 화분을 물에 가라앉지 않는 소재로 제작한다면, 바닷물이 범람했을 때도 농작물을 지켜낼 수 있다. 화분을 빌딩처럼 높이 세워 농작물을 기르는 ‘수직농장’도 제안됐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면서 직업과 정부 수입을 창출하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투발루에서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해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투발루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홍보하고, 각양각색의 가공식품 포장재를 이용해 포장해 해외에 되파는 사업을 상상할 수 있다. 플라스틱 패트병을 주거공간에 필요한 벽이나 담장을 쌓는 데 활용하는 ‘에코브릭’ 기술도 발견됐다.

이 외에도 가축의 분뇨를 재생에너지로 활용하는 기술, 태양열 에너지 기술, 섬 전체를 떠다니는 구조물로 연결하는 ‘플로팅 피어스’ 기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수집됐다.

안락한 내 방구석,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프로젝트를 통해 아카이브에 저장된 기술이 도시 생활공간에 접목된 모습 상상도. 사진=제로의 예술 웨비나 캡처

투발루 구하기 작전, 서울 도심에서 펼치기

강석현 건축가와 강주현 디자이너는 아카이브에 모인 기술을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의 생활공간에 적용하는 상상을 시도했다. 강주현 디자이너의 그래픽 작업을 통해 상상이 시각자료로 구체화됐다. 

바닷물의 범람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는 기술은 도심에 녹지를 확충하는 데 적용됐다. 수직 농장을 방문에 설치하면, 좁은 자취방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다. 큰 화분을 활용해 콘크리트로 덮힌 도로변에 정원을 조성하는 시도도 가능하다.

반려동물 화장실에서 에너지를 얻는 상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고양이 똥을 수거해 에너지로 바꾸고, 창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얻은 에너지를 더하는 것이다. 거창한 기계를 작동시킬 수는 없겠지만,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조명을 킬 수는 있을 것이다. 

강현석 건축가의 눈에 비친 투발루의 문제는 현대 도시가 겪는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투발루의 위기에 대해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라며 “투발루에 대해 고민한 뒤, 고민의 결과물을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옮겨와 현대 도시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투발루와 기후위기에 대해 이해하고, 대단한 운동과 변화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주현 디자이너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기후위기를 고민하기 시작할 것을 권했다. 그는 “서울과 투발루는 약 7200km 떨어져 있는데, 수천키로 밖에 있는 위기를 체감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우리는 그런 문제점들을 각자의 공간에 대입했을 때 실질적인 변화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위기는 투발루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문제가 클 수록 무력감에 빠지기 마련”이라며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과 상상의 출발점으로 가장 가깝고 좋은 지점은 각자의 집과 방이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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