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양이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생태와 환경을 고민한다면 누구나 ‘그린 디자이너’

기사승인 2021-04-25 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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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어린이 여러분, 각자 정말 사랑하는 동물이나 식물을 떠올려 봅시다. 여러분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그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러분을 선하고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도와줄 거예요. 어른이 된 여러분이 사랑했던 생명체를 다음 세대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김우진 지구를위한디자인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름조차 낯선 도요새의 멸종을 가르치는 자료화면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아이들의 눈빛은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 만화에 나오는 펭귄을 이야기할 때 빛난다. 그리고 곧장 이들 생명체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김 대표가 아이들을 1일 ‘그린 디자이너’로 만든 것이다.

‘공존을 위한 균형의 테이블’ 워크숍에서 만난 김 대표는 “그린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디에나 접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린 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15년 1인 기업 지구를위한디자인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전시회를 기획하거나,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제작·진행한다. 워크숍은 24일과 25일 이틀간 광주 동구 ‘바림’ 작업실에서 진행됐다. 바림은 2013년 출범한 광주 지역 예술가들의 공동체다. 젠더, 시니어 여성, 퀴어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최근 기후위기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 고양이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김우진 지구를위한디자인 대표가 그린 디자인이 적용된 도로 표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그린 디자인, 환경에 손을 댄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린 디자인은 제품의 생산, 소비, 폐기 등 전 주기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환경과 생태계를 고민하는 활동 자체가 그린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사람의 생활 공간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편리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제품 디자인, 가구 디자인, 건축 디자인, 의상 디자인 등 세부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모든 디자인 과정에서 환경 오염이 일어난다. 폐기물이 나오고 자원의 낭비도 발생한다. 디자인이 발달할 수록 환경 파괴 문제가 불어나는 것이다.

그린 디자이너는 모든 디자인 과정에 숨어있는 환경 오염 요소를 포착하고, 이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티셔츠를 만드는 과정에 그린 디자인을 적용하면, 제품의 원단을 폴리와 레이온에서 친환경 소재로 변경할 수 있다. 기존의 원단 염색 공정을 개선해 폐수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작업도 그린 디자인이다. 차로를 만드는 데 그린 디자인을 적용하면, 페인트 사용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면 표시 기호를 개발할 수 있다.

“우리 고양이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워크숍 참여자들이 김 대표가 제작한 그물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생태적 감수성, 요람에서 요람까지, 다음 세대 생각하기

김 대표는 지구를위한디자인을 설립하면서 그린 디자인의 목표를 3가지로 정리했다. 생태적 감수성은 김 대표가 꼽은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인간 이외의 동물, 식물, 자연물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태적 감수성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감수성을 공유하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 김 대표의 역할이다.

제품의 폐기 이후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람에서 요람까지’는 자원의 순환을 강조하기 위한 김 대표의 슬로건이다. 대부분의 환경 정책은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변화를 꾀한다. 하지만 그린 디자이너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폐기된 제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적한다.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는 그린 디자인의 필수 고려사항이다.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지 않는 한, 현재 세대가 훼손한 생태계를 미래 세대가 그대로 물려받는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린 디자인은 당장의 편의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그린 디자인 작업물에 내포되어 있다. 그가 환경교육 교구를 들고 전국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누비는 원동력도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김 대표는 모두가 그린 디자인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존의 과제 수행 방식을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축제를 기획하는 대학생은 어떻게 하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할지 고민할 수 있다. 판촉물을 만드는 회사원은 판촉물의 수량, 소재, 활용도를 꼼꼼하게 확인해 공해와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 김 대표는 “환경과 생태계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그린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것”이라며 “익숙한 생활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금씩 개선하는 것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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