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받고, 담배꽁초 한장 더!”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쓰레기섬 없애고 돌고래 구하는 방법, 게임판 위에서 고민하기

기사승인 2021-04-26 06: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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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페트병 받고, 담배꽁초 한장 더!”
25일 광주 동구의 예술가 커뮤니티 ‘바림’에서 ‘공존을 위한 균형의 테이블’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이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광주 동구의 허름한 상가 3층,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테이블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게임판을 펴고 카드를 나눠 가졌다. 2시간이 넘게 웃음과 탄식이 반복되며 박진감 넘치는 게임이 이어졌다. 비밀스러운 도박장이 아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환경 보드게임장이다.

25일 광주 동구의 예술가 커뮤니티 ‘바림’에서 김우진 지구를위한디자인 대표와 13명의 시민들이 생태계 문제를 의논하는 ‘공존을 위한 균형의 테이블’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가자들과 함께 보드게임 속에서 해양 쓰레기를 처치하고 동물들을 구조해 봤다.

지구를위한디자인은 친환경 전시회와 환경교육 프로그램 및 교구를 기획하는 ‘그린 디자인’ 전문 기업이다. 그린 디자인은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 요소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고안하는 작업이다. 워크샵은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페트병 받고, 담배꽁초 한장 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이해하고 분리배출 상식을 얻을 수 있는 ‘플라스틱 아일랜드’게임. 사진=한성주 기자

쓰레기섬 소탕 작전 ‘플라스틱 아일랜드’ 게임

첫 번째 게임으로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플라스틱 아일랜드’가 진행됐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다. 우리 말로는 쓰레기섬이라고 부른다. 해상에 표류하던 쓰레기들이 해류로 인해 한 곳에 모여 형성된다. 다양한 쓰레기들이 플라스틱 아일랜드를 구성한다. 크기가 작은 생활쓰레기는 물론, 어망과 그물 등 어업에서 발생한 대형 폐기물도 발견된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해양 생물의 성장과 번식을 방해하고 질병을 일으키는데, 특히 미세 플라스틱은 어류에 축적된 채 사람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보드게임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카드 뒤집기 게임이다. 지구를위한디자인, 코어스토리, 라운드트라이앵글 등 3개 소셜벤처가 공동 개발했다. 5개 대양에 플라스틱 아일랜드가 그려진 세계지도가 게임판이다. 게임카드 40장에는 비닐봉지, 병뚜껑, 전구, 담배꽁초, 가전제품, 어업폐기물 등이 그려져 있다. 소재와 분해기간, 위해도 정보도 적혀 있다. 카드를 모두 뒤집어두고, 참여자가 돌아가면서 두 장씩 뒤집는다. 같은 카드를 뒤집으면, 이를 분리수거 지점으로 옮겨 소거할 수 있다. 분리수거 지점은 일반쓰레기, 종이, 비닐, 금속 등으로 나뉜다. 카드가 모두 없어지면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쓰레기 분리배출 상식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종이류로 배출되는 쇼핑백은 사실 일반쓰레기였다. 방수 소재로 코팅되기 때문이다. 유리 조각이 미세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자연 분해되지 않고 생태계를 떠돈다는 사실도 처음 접했다. 일주일에 한번 저녁 6시쯤 “나 분리수거 하고 올게!”라는 외침이 틀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쓰레기를 분류해 버리는 것은 ‘분리배출’이다. 분류된 쓰레기를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 가져가는 작업이 ‘분리수거’, 수거된 쓰레기들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자재로 활용되는 단계는 ‘재활용’이다.

게임 이후 참여자들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소비 습관을 공유했다. ‘OTHER’ 표시가 찍힌 제품을 피하자는 약속에 모두가 동의했다. 다양한 소재가 섞여 제작된 제품의 겉면에 OTHER이 기입된다. 이런 제품은 재활용될 수 없어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제품인데 OTHER을 기입하는 경우도 많다. 재활용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폐기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페트병 받고, 담배꽁초 한장 더!”
돌고래 불법 포획 실태를 인지하도록 돕는 게임 ‘돌고래는 바다로’. 사진=한성주 기자

납치된 돌고래 구출하는 ‘돌고래를 바다로’ 게임

이어진 두 번째 게임은 돌고래 불법포획 문제를 다루는 ‘돌고래를 바다로’다. 수족관에 들어있는 돌고래는 모두 납치 피해자다. 돌고래는 인위적으로 번식시키기 어려워, 야생에서 포획된 개체가 상품으로 거래된다. 우리나라 수족관 속 돌고래는 대부분 러시아와 일본 다이지 지역에서 포획된 개체다. 돌고래를 보호하는 환경시민단체 핫핑크돌핀에 따르면 현재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제주 퍼시픽랜드 ▲제주 마린파크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 ▲거제 씨월드 ▲서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등 총 7곳의 시설에 총 26마리의 돌고래가 지내고 있다.

돌고래를 바다로는 핫핑크돌핀스와 소셜벤처 라운드트라이앵글, 겜브릿지가 공동 개발했다. 윷놀이처럼 게임판에서 말을 탈출시키는 게임이다. 게임판에서 돌고래 모양의 말들이 아쿠아리움-중간쉼터-바다 순서로 움직인다. 참여자들에게는 숫자가 표시된 두 묶음의 카드가 주어진다. 아쿠아리움 카드에는 ‘돌고래 쇼를 관람한다’ 등 돌고래 불법포획을 부추기는 행동이 적혀있다. 액션 카드에는 돌고래 학대를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적혀있다. 카드들을 무작위로 뽑아 액션 카드의 숫자가 아쿠아리움 카드의 숫자보다 크면 말을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게임이 끝나고 김 대표는 돌고래 자연 방류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공원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돌고래를 모두 바다로 방류하거나 다른 시설로 옮기고 돌고래쇼를 폐지했다. 제돌이를 시작으로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태산이, 금등이, 대포, 네모 등 7마리의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방류에 앞서 돌고래들은 바다에 설치된 가두리에서 수 개월을 지내며 야생 환경에 재적응했다. 암컷인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는 방류 이후 출산도 했다.

방류된 돌고래들과 함께 서울대공원에서 지냈지만,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돌고래도 있다. 일본 다이지에서 수입된 ‘태지’다. 외래종인 태지는 생태계 교란 가능성이 있어 우리나라 바다에 방류할 수 없었다. 돌고래 사냥이 계속되는 다이지로 돌려 보내면, 다시 포획돼 팔려나갈 위험이 크다. 환경단체들은 우리나라 바다에 가두리 형태의 ‘바다쉼터’를 조성해서 수입해온 돌고래들을 방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구체화된 대책은 없다. 태지는 현재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지내고 있다. 

“페트병 받고, 담배꽁초 한장 더!”
김우진 지구를위한디자인 대표가 제품의 소재와 재활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은 각자 일상에서 지킬 원칙을 얻었다. 제품을 구매할 때는 포장재를 확인하고, 여행 장소를 선택할 때는 동물권을 고려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주제로 대화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도 권장됐다.

환경과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김 대표는 ‘함께’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함께 제작하고, 여럿이서 진행해야 하는 보드게임처럼 환경을 보호하는 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며 “환경을 위해 결심한 일을 실천으로 옮기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행동에 동참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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