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웰-다잉(Well-Dying)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아시나요?

- 대전웰다잉연구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민간등록기관...대전 유일
- 양무석 상담사 "연명의료결정제도로 말기환자, 임종 전 환자 등 자연사 선택 가능"
- " 인간이면 두렵고 무서운 ‘죽음’ ... 그러나 현명한 결정 고려 필요"

입력 2021-05-03 12:47:49
- + 인쇄

[집중취재] 웰-다잉(Well-Dying)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아시나요?
양무석 상담사는 "인간의 존엄사에 대한 고찰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말한다. 사진=한상욱 기자.

[대전=쿠키뉴스] 한상욱 기자 =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는 문제이다. 무거운, 그래서 말하는 것조차 사실 두려운 죽음의 문제.

태어난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죽음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죽음이 자식에게도 형제에게도 부담되지 않게 경제적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삶의 문제도 대부분 서민들에게는 경제적 문제이고, 죽음 또한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인식된다. 말하기 두렵고 무거운 것도 바로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웰다잉(Well-Dying). ’죽음‘이란 단어를 앞에 두고 꺼내기 어려운,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가지 결정. 바로 ’연명의료결정제도‘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들고 대전시 내 곳곳을 돌며 등록을 홍보하고 있는 대전웰다잉연구소(소장 이철연) 양무석 상담사(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명예교수)를 만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무엇인지, ’웰다잉(Well-Dying)‘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편집자]

‘연명의료결정제도’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국민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19세 이상의 성인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힐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본격적으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 보라매병원사건이었으며, 이후 2009년 김할머니사건으로 본격 시행됐다.

1997년 발생한 ‘보라매병원사건’을 간략히 보면, 사업실패로 인한 주사로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 치료를 받던 도중 인공호흡기를 달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됐다.

환자가족은 이미 치료로 인한 병원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퇴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환자가 퇴원후 사망할 수 있다고 했고, 아내는 퇴원을 요구했다. 의료진에 대한 법적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귀가서약서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구급차로 집으로 이송했다. 집에 도착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 환자는 5분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의료진은 살인 및 살인방조죄로 2년 6개월을, 아내 또한 살인죄로 법원판결을 받았다. 이후 병원에서는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 가족들의 퇴원 요구는 전부 거절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은 환자가 2008년 2월 폐암판정을 받고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이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치료를 하고 있었으나 자녀들이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연명치료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은 이를 거부했고, 가족들이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후 영양공급을 튜브로 받은 김할머니는 2010년에 사망했다.

김할머니사건에 대한 2009년 5월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 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에 대하여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써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인간의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라 할 수 있다.

이후 존엄사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되자 2013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연명의료결정을 법제도화하기 위한 권고안을 마련했으며, 2016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 2018년 2월 4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됐다. 이에 따라 2021년 4월 기준 보건복지부 지정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전국 400여 개소에 달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본인이 작성해야 하며 환자의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라면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가 등록을 확인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등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경우 담당의사가 작성한다. 확인되지 않을 시에는(서식이나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가족 2인 이상이 연명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동일하게 진술하고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가 확인한다.

앞선 모든 경우가 불가능할 경우,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한 연명의료중단등결정에 대해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가 확인한다. 이 경우 환자가족 범위는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존비속이며, 없을 경우 2촌이내의 직계존비속이, 이 또한 없을 경우 형제자매이다.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 시술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체외생명유지술, 항암제 투여, 혈압상승제 투여, 수혈,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다. 그 밖에 담당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술 등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로 안락사와 존엄사가 합법화한 것은 아니다.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시술을 시행하거나 물·영양·산소의 단순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받고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하고자 하는 환자가 아닌 경우라면 일반적인 원칙을 따르면 된다.

대전웰다잉연구소 양무석 상담사는 “ ‘김할머니사건’으로 인해 공론화되어 이제 3년을 맞이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최근 90만 명이 넘게 등록됐다”며, “지속적으로 증가(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하고 있으며, 호스피스가 있는 큰 병원 등과 건강보험공단에서도 등록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전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민간등록기관으로는 ‘대전웰다잉연구소’가 유일하다"며, “중환자병실에 입원해 하루 수십만 원의 연명치료비를 지속적으로 부담해야하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나는 것보다 호스피스가 있는 병원에서 하루 몇 천 원 정도로 편안하게 자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뿐”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죽음 앞에 ‘무의미’란 단어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의학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 생명유지만 할 수 있는 환자와 환자가족들에게 적어도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가는 사람에게는(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특히, 부모의 경우엔 혹시나 내 죽음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지 하는 걱정에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양무석 상담사는 “웰다잉(Well-Dying)이란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라며 “‘하늘여행준비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봤다. 18가지 문항이 있는데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 보람스러웠던 일과 후회스러웠던 일 등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이다. 일종의 장례에 대한 위시(wish)리스트라고나 할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정리하는 순간, 삶의 모든 것이 회상되고 앞으로 남은 삶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swh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