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한다며 알바 갈때 노트북 챙긴 동생…이렇게 떠날 줄은”

정진용 / 기사승인 : 2021-05-07 17: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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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 사망 사고' 누나, 청와대 국민청원 독려글에 답글

사고가 발생한 평택항 FRC 모습. 이씨 지인 SNS.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조카 보고 싶다고 통화하고 애기 보느라 정신 없어서 ‘나중에 또 통화하자’고 끊은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고 알바 시작했습니다. 그날도 알바 가며 시험 공부 한다고 노트북이며 책 다 챙겨가서 공부한 동생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평택항 부두에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던 20대 근로자가 사고로 숨졌다. 진상규명이 늦어지며 유족은 2주 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고 이선호(23)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lat Rack Container)라 불리는 개방형 컨테이너 내부 뒷정리를 하다가 300㎏에 이르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대책위는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와 정의당 경기도당, 재단법인 와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등 13개 단체로 꾸려졌다.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인은 ‘300kg 컨테이너에 깔려 돌아가신 이선호군의 안타까운 죽음’이란 게시물을 올렸다. 이 게시물에서 청원인은 “지금 이 시간 많은 청년들 또는 중장년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현장에서 장비에 대한 관리소홀,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청원에는 이날 오후 5시 기준 5만여 명이 동의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유족은 비통해하고 있다. 이씨 누나는 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독려글에 직접 장문의 답글을 달았다. 이씨 누나는 “회사는 책임자가 계속 지시한 적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안전모 안 쓴 우리 동생을 탓하고 있는데 안전모 썼어도 300kg 넘는 무게가 넘어졌으면(속수무책이다). 우리 동생은 악소리도 못 내고 그 자리서 즉사했다”고 슬퍼했다.

이씨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당시 컨테이너 관리는 원청업체가 담당하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이씨는 군복무를 마친 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택항 용역회사에서 창고·컨테이너 하역작업, 동식물 검역 일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업무 통폐합으로 이씨는 원래 하던 업무 대신 컨테이너 정리 작업에 갑자기 동원됐다. 사고 당일이 이씨가 FRC 날개 해체 작업에 투입된 첫 날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배정돼야 한다. 그러나 사고 당시 이 군은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없는 가운데 현장에 배치됐고,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않고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소속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 SNS.

대책위는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 주식회사 동방의 이선호군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 ▲ 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 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씨 아버지는 기자회견에서 “아이가 무거운 철판에 깔려서 숨이 끊어져 가는 순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를 보고도 (회사 관계자는) 119에 구조 신고를 하는 것이 아닌 윗선에 보고했다”고 규탄했다.

경찰은 이씨가 본래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된 경위와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이씨 유족과 지인은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소속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같은날 트위터에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사진을 올렸다.

김 지부장은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여전히 빈소가 쓸쓸하다. 언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민 관심이 낮아 마음이  안타깝다”면서 “중대재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마음을 보태는 게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글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