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최문갑 / 기사승인 : 2021-05-17 00: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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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박한표 학장.
마음 둘 곳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사람 만나는 일이 어려워지다 보니, 더더욱 마음 둘 장소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동시에 타인을 맞아들일 여백도 줄어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확고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다른 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던 결속감이 느슨해 지면서,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다는 적막함이 스멀스멀 깃든다. 그래 이 허전함과 적막함을 떨쳐보려 이것저것 손을 대보지만 영혼의 움푹 팬 자리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럴수록 숙성되지 않은 욕망은 더 집요하게 우리 옷자락을 잡아 끈다는 점이다. 악순환이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어서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가장 좋은 위로는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 못지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나의 어려운 처지처럼 느껴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지만, 마음의 얼룩은 걷어내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연민으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심(治心), 즉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몇 일 전부터 나는 "'서슴없이' VS '머뭇거림'"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머뭇거림'이라 했다. "'머뭇거림'은 겸허함의 자세로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태도"라 강조하기도 했다. 사람을 외모로 그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다. 

김기석 목사는 2017년 노벨 문학상을 탄 가즈오 이시구로(일본에서 태어난 영국 소설가)의 최근 작, <클라라와 태양>을 소개하였다. 나는 그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작품을 오늘 주문할 생각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근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클라라는 인공지능이다. 가즈오가 이 작품을 통해 묻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마음 둘 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AI 로봇 클라라를 친구로 산 조시의 아버지가 AF(아티피셜 프렌드의 약자) 클라라에게 묻는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란 걸 믿니?" 그러자 클라라는 다소 혼돈을 느꼈다고 한다. 조시의 아버지 폴은 인간의 마음이란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습관이나 특징, 말투나 행동거지를 아는 것만으로 그를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김기석 목사는 "마음은 방이 많은 집과 같아서 방들을 하나하나 열고 들어가 각 방의 정보를 조합하면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방 속에 또 다른 방이 있고,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눈 앞에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미로와 같다"고 말하였다. 내 마음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겠는가? 

우리는 흙에서 흙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떠나야 한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걸린 외줄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는 고갱의 그림 제목이지만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흙에 불안을 더하면 인생이고, 인생에서 불안을 빼면 흙이다.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숙명을 안고 살면서 지향을 잃지 않을 때 삶은 의젓해진다. 지향이 중요하다. 이 지향이 내가 마음 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