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책임 분배하는 '환경정의' 어떻게 실현할까

[그린뉴딜 탐색기] 한국판 그린뉴딜, 노동자 낙오 대책 '깜깜'

기사승인 2021-05-22 06:00:02
- + 인쇄
<편집자주> 벚꽃, 전력수요, 장마. 함께 나열하기 어색한 단어들 사이에 '기록 경신'이라는 공통점이 생겼습니다. 올해 서울의 벚꽃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빨리 피었습니다. 북극발 한파가 닥친 지난 1월 전국 최대전력수요는 처음으로 9000만KW를 넘겼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장마가 무려 54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기후변화 현상의 한가운데 놓인 우리는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됐을까요? 쿠키뉴스는 환경NGO 푸른아시아와 성공적인 그린뉴딜 계획을 찾아 나섭니다.

이익·책임 분배하는 '환경정의' 어떻게 실현할까
서울 전역에 한파경보가 발효된 7일 서울 시내 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녹지에 공장이 설립되면 이윤과 공해가 발생한다. 이윤은 공장주에게 돌아가지만, 공해는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 쏟아진다. 공장이 친환경 스마트 기술을 도입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공해는 줄어들지만, 공장 노동자들의 거취는 불안해진다. 

환경문제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이익과 피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불평등하게 주어진다. ‘환경정의’ 개념은 환경 개발의 이익과 책임을 합당하게 분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익·책임 분배하는 '환경정의' 어떻게 실현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익만큼 책임 부과하는 ‘탄소관세’ 꺼내든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요 환경정책 슬로건으로 ‘청정에 너지 혁명 및 환경 정의(Clean Energy Revolution and Environmental Justice)’를 제시하며 환경정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미국경제를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중심의 ‘청정에너지 경제(clean energy economy)’로 전환해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 탄소관세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기업의 상품에 높은 세금을 부과해, 탄소 배출로 취한 이득과 비례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구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관세를 비롯한 무역정책에 환경 관련 규제를 결합할 것을 예고했고, 향후 해외 정부와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적용할 환경기준을 강화할 계획을 공언해 왔다.

탄소배출 기업이 누렸던 혜택을 거둬들이는 전략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환경정의를 동반한 전환을 위해 향후 10년간 정부와 민간 분야에서 총 6조7000억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세와 화석연료 보조금 부과 등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지했던 탄소배출 기업에 대한 부당한 혜택을 개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업의 성장을 돕는 지원책도 구상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장기업들이 환경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투자를 활성화하면 투자자들은 기업의 친환경 행보를 감시하게 되고, 기업은 환경오염을 통한 단기적 이윤추구에 매몰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기업에 민간자금이 활발히 유입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익·책임 분배하는 '환경정의' 어떻게 실현할까
유럽의회. 사진=연합뉴스

‘낙오 없는 전환’에 방점 찍은 유럽연합

유럽연합(EU)의 환경정책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은 ‘낙오 최소화’에 방점이 찍혔다. 유럽집행위원회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경제구조의 대규모 전환이 불가피하며, 이 전환이 EU 소속의 모든 국가 정부, 사업가,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유럽그린딜은 추진 과정에서 누구도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내포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우선 EU회원국 정부의 소외를 방지하기 위한 대규모 기금 조성에 나섰다. 회원국들의 경제력 격차에 따라 상대적 빈국이 낙오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각국 정부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유로 규모의 ‘공정한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조성하는 논의를 진행했다. 유럽투자은행 등으로부터 1조 유로 규모의 지원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노동자의 낙오를 막을 전략도 고안하고 있다. 유럽그린딜은 고용구조의 변화를 동반한다. 특히,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디지털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면 주요 탄소배출 산업군과 1차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런 산업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일자리 교육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유럽집행위원회의 판단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전략(farm to fork strategy)’은 노동자 낙오를 막는 대표적인 방안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존을 동시에 성취하려면, 환경친화적인 식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순환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이 탄소중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농수산업 종사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기회 보장 ▲살충제 등 화학제품 사용 감축 ▲친환경적 기술개발 지원 ▲수입식품에 유럽 기준 적용 등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익·책임 분배하는 '환경정의' 어떻게 실현할까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한국판 그린뉴딜, 노동자 낙오 대책 깜깜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ESG 투자 활성화 방안과 유사한 계획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포함된 ‘그린뉴딜’은 정책형 뉴딜펀드의 구체적 조성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ESG 투자 관련 정보 공개를 확대해, 민간 금융회사가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자동차 등의 투자처를 발굴해 펀드를 결성하고 ESG 투자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펀드가 활성화되면, 투자자들은 기업의 기후변화 기여도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하고 투자처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노동자의 낙오를 막기 위한 묘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린뉴딜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내 주요 탄소배출 산업군인 석탄·석유 기반 에너지 산업, 자동차·선박·항공 업계 등의 일자리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스마트·디지털 기술이 창출할 일자리에 기존 노동자들이 수용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이들 업계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명확히 언급된 사례가 없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경제 기반이 탈탄소·탈석탄으로 전환되면, 국내 석탄발전 기업들은 시장 가치 하락이 불가피한 좌초산업이 된다”라며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물론, 유관 업계 노동자들까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기술에 집중하는데,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계획대로 시장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단기적으로 3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린뉴딜의 예산 내역에서 낙오된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1조달러가량의 예산을 노동자, 농·어민, 저소득층 등 전환으로 피해를 입을 계층에 대한 지원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참고
-바이든 신행정부의 주요 정책 전망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2021.1.27.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 논의 동향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2020.1.29.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