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 대신 ‘환자혈액관리’…의료선진화 과정” 

고려대 안암병원, 한국형 적정수혈 지침 내놔 

기사승인 2021-06-16 04: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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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대신 ‘환자혈액관리’…의료선진화 과정” 
사진=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저출산‧고령화,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혈액 부족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의료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환자혈액관리(PBM) 지침서가 나왔다. 그간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관행적 이유, 인식 부족 등의 이유 등으로 불필요한 수혈이 계속 이뤄지고 있었는데 병원 단위의 적정수혈 경험 및 증례가 담긴 지침서 발간으로 환자혈액관리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고려대 안암병원이 최근 발간한 ‘병원차원의 적정수혈 길잡이’는 적정수혈을 도입하려는 병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한 의료진용 PBM 지침서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무수혈센터장은 “해외에는 PBM의 필요성 및 가이드라인과 관련한 논문들이 많이 나왔는데 한국에서 이를 적용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적정수혈의 기준만 알려줘도 수혈을 줄일 수 있다는 논문이 있지만 대부분 그 기준을 모른다”라면서 “혈액 부족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최근 정부도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간 병원에서 해오던 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우리 병원은 수년 전부터 관행적 수혈의 문제점을 파악해 수혈관리프로그램을 구축하고 한국형 PBM을 실현했다. 그 과정을 정리한 게 이 책자”라고 밝혔다.  

PBM는 ▲환자 스스로 혈액 생성을 촉진하도록 해 수혈을 최소화 ▲수술시 환자의 출혈을 최소화 ▲수술이 끝난 이후에 환자의 혈액량이 적어도 생리적 보전능력을 향상시켜 집중관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수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적정수혈을 하고,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적정수혈을 하지 않아 혈액사용량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적정수혈은 혈액 확보뿐만 아니라 환자의 치료결과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 수혈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0년 환자혈액관리(PBM)를 도입하도록 권고한 상황이지만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저렴한 혈액 가격, 관행적 이유, 인지 부족 등의 이유로 불필요한 수혈이 이뤄지고 있다. 


“수혈 대신 ‘환자혈액관리’…의료선진화 과정” 


안암병원은 지난 2013년부터 수혈관리프로그램을 구축하며 혈액관리에 힘써왔다. 수혈관리프로그램은 의료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수혈가이드라인을 확인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수혈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형외과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한 결과, 환자 1만명당 수혈량은 2012년 157.5유닛에서 지난 2018년 76.4유닛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또 전체 외래 및 입원환자의 적혈구 수혈 적정률은 2018년 평균 37.5%이었으며, 무수혈센터를 개소한 뒤 2019년 평균은 62%로 상승했다. 병원 전체에 무수혈/최소수혈을 적용하자 2020년 평균 적정률은 80.2%였다. 

정 교수는 “처방시스템이 바뀌기 전에는 수혈 처방 시 바로 혈액이 공급됐는데 지금은 환자의 혈액수치 등 몇 단계를 더 거쳐야 수혈을 할 수 있다. 수혈이 필요한 상황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기만 해도 수혈량을 줄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내용과 함께 주요 수술 및 진료과별 PBM 유의사항, 기준, 방법 등에 대한 우리의 노하우가 책자에 기술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자는 PBM을 도입하려는 병원 쪽에 배포할 계획이다. 혈액관리는 대부분의 큰 상급종합병원에서도 관심이 낮은 부분이었는데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전반적인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더 나아가서 지금도 O형, A형 혈액이 계속 부족하다고 하는데 전체 혈액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환자혈액관리는 더 높은 수준의 치료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환자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의료 환경에서는 새 장비, 새 치료재료를 수입해 적절히 공급하는 것에 신경을 쓰겠지만 그런 상황이 안정화되면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보건의료체계로 나아간다”며 “PBM 도입은 의료선진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정부도 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혈액관리 정책 수립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PBM 유효성 등 근거가 많지 않다. 의료계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아주 작은 병원에서도 혈액관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한국처럼 피가 싼 나라가 없고 철분제제 등 수혈 대체제는 비급여인 게 많다. 제한적인 약제 접근성 등도 혈액관리에 있어 풀어가야 할 숙제다. 그런 부분들을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겠다”고 강조했다.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