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의 ‘탈팡’을 기대하며

'탈팡'은 쿠팡이 해야

기사승인 2021-06-30 0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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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쿠팡의 ‘탈팡’을 기대하며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탈팡’

쿠팡친구(구 쿠팡맨)들이 쿠팡을 퇴사할 때 쓰는 은어다. 최근에는 덕평물류센터 화재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소비자들이 ‘쿠팡을 탈퇴했다’는 말로도 자주 쓴다. 안전관리 소홀과 오너 책임 회피 논란이 일며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탈팡’에는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김범석 전 쿠팡 의장이 그 중심에 서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쿠팡은 안전사고와 근로자의 노동 환경 문제로 항상 발목을 잡혀왔다.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쿠팡의 산업재해 문제를 수면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세간에선 ‘연이은 사고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쿠팡에 따가운 눈초리를 보낸다. 현장 노동자들은 “화재예방을 위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핸드폰 반입 금지 등 조치로 신고조차 늦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화재 원인은 진행 중인 조사를 지켜볼 일이다. 다만 대중의 실망감에 기름을 부었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김 전 의장이었다. 쿠팡은 지난 17일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후 5시간 뒤, 김 의장의 사임 보도자료를 냈다. 김 의장이 한국 쿠팡 지분을 100% 보유한 미국 증시 상장법인 쿠팡 아이엔씨의 최고경영자 직에 전념하며 글로벌 경영에 집중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김 전 의장이 화재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물러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가 형식상 한국 쿠팡에서 손을 떼는 만큼, 앞으로 쿠팡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 사망이 발생해도 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 탓이었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재해가 아닌 대형참사인 '중대시민재해'의 경우에도 경영자와 법인이 같은 수위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올해 1월 공포됐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쿠팡 측은 ‘우연’ 이라며 적극 해명했다. 김 전 의장이 이미 지난달 5월 31일 쿠팡 등기이사에서 사임했지만, 등기 완료 시점이 화재 발생 때와 ‘공교롭게 겹쳤던 것’ 이라고. 이는 등기부등본을 통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도 강조했다. 말 그대로 기막힌 우연이었던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는 말처럼.  

그럼에도 사람들의 ‘탈팡’이 이어졌던 것은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던 탓이다. 결과적으로 김 의장은 화재 사고가 난 가운데, 중대재해법 처벌 논란만 남겨두고 홀가분히 미국으로 빠져나간 모양새가 됐다. 대중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여기였다. 이후 쿠팡은 화재에 대한 보상과 직원 생계 보장, 개선 방안 등 방침을 내놨지만 여론은 차갑게 식은 뒤였다. 

대중들은 우연에 대한 적극적 해명보다, 쿠팡을 창업한 김 전 의장의 책임 있는 한마디를 바랐다. 김 전 의장은 미국 증시 상장 직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창의성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며 “혁신에 계속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가 말한 혁신이 매출만을 늘리는 일은 아닐 거라고 대중들은 아직까지도 굳게 믿고 있다.

쿠팡은 이제 한국 유통산업을 쥐락펴락하는 대기업이 됐다. 규모가 커진 만큼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지금과 같은 회피주의식 경영으로는 ‘쿠팡 없는 미래’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 김 전 의장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쿠팡은 과거의 모습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탈팡은 쿠팡이 해야 한다.  

ist1076@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