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형! 오디션이 왜 이래

기사승인 2021-07-02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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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형! 오디션이 왜 이래
SBS ‘라우드’ 첫 회에서 자작 시로 매력 무대를 꾸민 이동현.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잠시 감정 좀 잡겠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은 15세 소년이 말한다. 진지하게 건반을 두드리던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스친다. 소년이 다시 입을 뗀다. “에어 프라이어 같아. 공기로 맛있게. JYP(박진영)”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가 평소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을 강조하는 데 착안한 짧은 시(時). 그의 대담함에 놀란 박진영이 곁에 앉은 싸이에게 묻는다. “뭐지? 나 이해가 안 돼. 너랑 내 앞에서 이럴 수가 있어?” 둘은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의 스타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막을 올린 SBS 오디션 프로그램 ‘라우드’(LOUD)는 참가자들의 춤과 노래를 평가하는 ‘실력 무대’ 말고도, 내면을 살펴볼 ‘매력 무대’를 평가 항목으로 설치했다. 심사위원 박진영과 싸이를 주인공으로 짧은 시를 써온 15세 소년 이동현을 비롯해 참가자들은 마술, 애교, 복싱, 쌍절곤 기술, 심지어 접시돌리기까지 선보였다. 그 중에는 다니엘 제갈처럼, 실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매력 무대만으로 합격을 따낸 이도 있다. 

일찍부터 SBS ‘K팝 스타’ 시리즈 제작진이 처음 만드는 아이돌 오디션으로 주목 받은 ‘라우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으며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꾀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들로 속이 가득 찬 사람이 다음 K팝을 선도”(박진영)할 거라는 판단에서다. SBS ‘K팝스타’ 시리즈에서 과잉 반응으로 숱한 ‘밈’을 남겼던 박진영은 ‘라우드’에서도 특유의 쇼맨십과 예술론으로 ‘심사 초보’ 싸이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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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극한데뷔 야생돌’ 예고 화면.
오는 9월 시작하는 MBC ‘극한데뷔 야생돌’은 더욱 과감한 콘셉트를 시도한다. 제작진은 ‘정형화된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 실력, 멘탈(정신력) 그리고 본능을 통해 생존하는 야생돌’을 보여주겠다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와 오디션이 결합된 형식을 예고했다. 지원자들은 이름과 나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야생돌 n호’로 불리며 보이그룹 데뷔를 위해 경쟁한다.

아이돌 오디션계의 ‘전통 강자’도 속속 신작을 내놓는다. 먼저 Mnet은 오는 8월 ‘걸스 플래닛999: 소녀대전’을 선보인다. 한·중·일 16세 이상 여성 99명이 글로벌 아이돌로 데뷔하는 과정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경쟁을 강조하는 여느 오디션과 달리, 참가자들 간 화합에 방점을 찍는다. Mnet에서 ‘프로듀스101’ 시즌1을 기획했던 한동철 PD는 MBC와 손잡고 새 오디션 ‘방과 후 설렘’을 제작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학교생활을 콘셉트로 하는 프로그램. 소개 영상에 ‘입시 설명회’라는 별칭을 붙였을 정도다. 한 PD는 최근 지원 접수를 마감하고 11월 방송을 목표로 제작에 돌입했다.

Mnet ‘프로듀스101’ 시리즈를 만든 PD·CP와 같은 방송사 ‘아이돌 학교’ CP가 순위 조작으로 재판에 넘겨진 뒤, 아이돌 오디션은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타격을 입은 탓이다. Mnet은 ‘투 비 월드 클래스’ ‘아이랜드’ 등을 연달아 제작했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낮았다. 각 방송사가 시청률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콘셉트다. ‘극한데뷔 야생돌’은 예능 요소를 강화해 차별화를 노렸고, ‘방과 후 설렘’은 윤리성 논란의 여지가 큰 만큼 화제성도 입증된 ‘여고생’ 콘셉트를 가져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콘셉트와 형식이 다양해 보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프로듀스101’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봤다. 연습생은 아직 실력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매력을 강조해 팬덤을 끌어 모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매력 무대’ 같은 장치나, ‘야생’ ‘학교’ 등의 형식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정 평론가는 “기획사마다 많은 연습생이 데뷔하지 못한 채 정체돼 있는 반면, 이들을 보여줄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성공 가능성이 큰 연습생을 끄집어낼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들 요인이 무엇인지 방송사들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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