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기사승인 2021-07-08 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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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갑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용기 내서 말한다. 예고 없이 시험을 봤다. 기숙사 건물이 몇 년에 지어졌는지, 학생 수가 몇 명인지. 한자와 영어로 기숙사 이름을 쓰라는 문제도 있었다. 점수가 공개됐다. 동료들 앞에서 창피했다. 모두 울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시험갑질’ 등에 대해 폭로했다. 지난달 갑질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동료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에 재발 방지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 단체는 “더이상 청소노동자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후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예방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서울대에서 산재 사망사고로 죽어가는 청소노동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민주노총 조합원 고(故) 이모(59·여)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민주노총과 유가족은 이씨의 죽음을 과로사라고 봤다. 과중한 업무와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서울대 기숙사에서 근무했다. 생활하는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였다. 낡은 건물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4층 건물의 계단을 오가며 청소를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쓰레기양이 증가했지만 인원 충원은 없었다. 100ℓ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날랐다. 음식물·재활용쓰레기도 직접 운반해야 했다.

갑질도 심각했다. 지난달 1일 청소노동자를 총괄하는 안전관리팀장이 새롭게 부임했다. 그는 근무 질서를 잡는다며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청소노동자 회의를 신설했다. 회의에는 ‘드레스코드’가 있었다. 남성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과 구두, 여성에게는 “회의 자리에 맞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 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풀어야 했던 시험지.  사진=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도 신설됐다. 시험은 지난달 9일부터 회의 때마다 치러졌다. 업무와 큰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주로 출제됐다. 청소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자로 쓰게 했다. 각 건물의 준공연도도 문제로 출제됐다. “다음 중 대학원 동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921~926동의 준공연도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시험을 본 후 채점했고,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이씨는 “준공연도와 청소 업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점수가 높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무안을 준다”고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기자회견 시작 전 학교 측 관계자와 민주노총 관계자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이 증언하기 불안해한다며 관계자에게 기자회견장에서 벗어나줄 것을 요구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씨의 동료 노동자 2명도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썬캡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를 쓴 채 기자들 앞에 섰다. 동료 노동자는 “(회의 시간에) 멋진 모습을 하라고 했지만 근무 중이었다”며 “최대한 깔끔하게 입었지만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감점을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기숙사 건물이 몇 년도에 지어졌는지, 학생 수가 몇 명인지 시험을 봤다”며 “갑작스러운 시험과 점수 공개에 당황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 저희가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호소했다.
 
또 다른 노동자도 “바퀴벌레 약을 갖다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써야 했다. 제가 글을 모른다고 했더니 팀장이 자기가 쓴 대로 쓰라고 했다”며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화가 나서 못 살겠다”고 울먹였다. 

기자회견 시작 전 약간의 소란도 있었다. 학교 측 관계자가 기자회견장에 등장하자 일부 노동자들이 “두려워서 증언을 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측은 관계자에게 기자회견장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했다.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반박했다. 이에 “무릎 꿇고 있어라” “아무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느냐” 등의 고성이 오갔다. 관계자는 또 다른 학교 관계자의 만류로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점수 공개에 창피해 눈물” 동료 죽음에 목소리 낸 서울대 청소노동자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 A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에 나섰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이씨의 남편 A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A씨는 “묻고 싶다. 2021년도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야 하겠느냐”며 “저는 제 아내를 다시 볼 수 없지만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서는 안 된다.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하러 왔지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다”며 “서울대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번 일로 인해 갑질 당사자로 지목된 안전관리팀장이 해고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는 언급도 있었다. A씨는 “그분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가장”이라고 전했다. 안전관리팀장은 이씨의 장례식장을 찾아와 고개를 숙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는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해 “논의 중에 있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soyeon@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