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음에 ‘갑질’ 없었다는 서울대…유가족 “진실 가릴 수 없어”

기사승인 2021-07-11 1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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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음에 ‘갑질’ 없었다는 서울대…유가족 “진실 가릴 수 없어”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갑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지난달 사망한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가 중간관리자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의혹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유가족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학교 측의 입장에 반박했다. 

남모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기획시설부관장은 10일 기숙사 홈페이지를 통해 “위생원 선생님 한 분이 급성심근경색으로 휴게 공간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하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민주노총 측에서는 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말했다.
 
남 부관장은 “해당 관리자를 마녀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며 “안타깝고 슬픈 사고이지만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관리자를 억지로 가해자로 둔갑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도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며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기숙사 명칭 등을 한자·영어로 시험 보게 한 것에 대해 “기숙사를 처음 찾는 외국인들이 묻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응대를 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노동자를 비난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구 학생처장은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부분은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노동자 죽음에 ‘갑질’ 없었다는 서울대…유가족 “진실 가릴 수 없어”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인의 남편 이모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에 나섰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유가족은 서울대 관계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사망한 청소노동자의 남편 이모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겪었던 갑질은 사실”이라며 “사람을 지속적으로 때려야만 갑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시험 실시에 찬성하는 등) 아내가 학교 측의 갑질에 적극 동조한 듯 이야기를 하는데 말도 안 된다. 이는 또 다른 모욕”이라며 “아내는 ‘중간관리자와 함께 회의할 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다. 다음부터는 녹음을 해서 증거로 삼자’고 동료들과 분노했었다. 회의에서 불합리한 임금 삭감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 우리를 협박하시는 것이냐’고 반발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 대해 “노동자를 인간답게 바라봐달라는 호소였다. ‘시험갑질’ 등으로 우리를 관리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라며 “저도 서울대에서 기계 분야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학교가 ‘허드렛일’ 하는 직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관계자도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갑질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갑질이라고 여기면 갑질로 인정해야 한다”며 “시험 실시, 밥 먹는 시간 체크, 복장 지적 등 드러난 증거만으로 갑질인지 아닌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최소한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면서 “학교 관계자들이 작성한 글을 보면 노조를 범죄조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노동자 죽음에 ‘갑질’ 없었다는 서울대…유가족 “진실 가릴 수 없어”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풀어야 했던 시험지.  사진=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민주노총 조합원 고(故) 이모(59·여)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민주노총과 유가족은 이씨의 죽음을 과로사라고 봤다. 과중한 업무와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유가족에 따르면 중간관리자는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보게 했다. 청소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자로 쓰게 했다. 각 건물의 준공연도도 문제로 출제됐다. 매주 수요일마다 청소노동자 회의를 신설, ‘드레스코드’에 맞게 옷을 입도록 했다. 남성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과 구두, 여성에게는 “회의 자리에 맞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 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동료 노동자들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갑작스러운 시험과 점수 공개에 당황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며 “저희가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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