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징후는 있었다

기사승인 2021-07-28 0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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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징후는 있었다
MBC가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방송에서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사진을 써서 도마 위에 올랐다. MBC 방송화면 캡처.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무엇을 기대한 걸까요. ‘이번 올림픽 MBC 약 빤 드립’이라는 찬사를 바랐던 걸까요. 이번에는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번에만’ 그런 건 아닙니다. 방송사의 틀린 선택이 쌓이고 쌓여 최소한의 저지선마저 무너졌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참가국을 소개하며 조롱 섞인 사진을 쓴 MBC 이야기입니다.

MBC가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일부 국가와 관련된 부적절한 자료 화면을 써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는 화면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시리아 소개 땐 현지 내전 사진을, 아이티를 소개하면서는 대통령 암살 관련 사진을 내보냈습니다. 해외 언론은 “용납할 수 없는 실수”(CNN),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뉴욕타임스)라고 꼬집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례가 특별히 나빴을 뿐, 다른 국가를 소개하는 장면도 크게 낫지는 않았습니다.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노르웨이는 연어로 표현하는 등 참가국을 이미지 하나로 단순화해 묘사했습니다. 이 부적절한 화면이 아무런 제동 없이 전파를 탄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럽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태도입니다. 대상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려는 노력 없이 온라인 ‘짤방’을 닮아가려는 태도 말입니다.

징후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온라인식 농담을 그대로 TV 방송에 가져올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보여주는 징후 말입니다. 방송사가 축구 중계 해설자로 기용한 BJ가 상대국 언어를 비하해 논란이 일었을 때, 제작자들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사이다 드립’이 인종차별을 강화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했습니다. 총선 개표 방송에서 여성 후보들 간의 경쟁구도를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고 표현해 비판받았을 때, 제작자들은 온라인 밈이 성차별을 조장하지 않는지 반성해야 했습니다. 요컨대 방송 콘텐츠가 ‘짤방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내재된 혐오가 재생산되지 않는지, 제작자들은 충분히 살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과문을 내고도 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MBC는 남자축구 B조 예선 한국 대 루마니아 경기에서 루마니아 대표팀 마리우스 마린이 자책골을 넣자, 중간광고 화면 상단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내걸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과 맞붙은 일본 외야수 G.G사토가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자, 허구연 해설위원이 “고마워요 사토”라고 말한 것을 패러디한 자막이었습니다. 지금도 틀리고 그 때도 틀린 발언입니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고 깎아내리려는 속내가 저열하기 때문입니다.

MBC 박성제 사장은 이번 논란 이후 대국민 사과문을 내며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반드시 묻겠다.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관련자 징계와 시스템 점검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과 성평등 인식을 중요시하는 제작 규범이 체화될 수 있도록 의식 개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단 MBC에게만 요구되는 태도는 아닐 겁니다. 무엇을 보며 웃을 수 있는가. 온라인의 ‘약 빤 드립’과 ‘사이다 드립’을 좇느라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린 언론과 제작자, 모두가 돌아봐야 할 숙제입니다.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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