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디게임]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피드백, 두려워마세요”

[人디게임] 네 번째 손님

기사승인 2021-08-03 06: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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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디게임]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피드백, 두려워마세요”
사진=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강한결 기자

과거 인디게임의 불모지라 여겨졌던 한국시장이 변하고 있다. 독창성과 참신함을 매력으로 게이머를 사로잡은 인디게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디로는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인식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상황. 이에 쿠키뉴스 게임&스포츠팀이 유망 인디개발자를 게이머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2021년 상반기, 게이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작품이 있다. 스튜디오 휠의 ‘모험가 이야기’다.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베이스로 제작된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모험가가 돼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고, 선택해야 한다. 각각의 선택은 향후 결말에 영향을 미친다. 게이머들은 작품에 대한 호평을 전했다. 주목할 점은 이 게임이 스튜디오 휠의 첫 작품이라는 것이다. 지난 30일 대구광역시 모처에서 스튜디오 휠의 김상일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모험가 이야기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모험가 이야기는 스튜디오 휠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처음 기획 당시에는 훨씬 스케일이 컸죠.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동료도 생기고 용병단을 꾸려 여러 명이 전투하는 방식으로 구상했어요. 하지만 세 명으로는 모든 계획을 구현하기 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아트 부분은 정말 미숙했어요. 그래서 스토리에 집중을 하지는 결론이 나왔죠. 그나마 스토리 쪽에는 강점이 있거든요. 저도 소설을 좋아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친동생도 애니메이션 학과거든요. 선택과 집중을 명확히 했습니다.

Q.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개발을 하셨나요?

게이머가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유저의 선택으로 결말이 결과가 바뀌면 조금 더 성취감을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각각의 선택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결과가 나오도록 집중했어요. 하나하나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뀌도록 신경 썼습니다.

CDPR의 ‘위처’처럼 세계관을 직접 만들려고 했지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기존에 많이 쓰였던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사용하기로 했어요. 저희는 TRPG(테이블 RPG) 장르의 대표 격인 ‘던전 앤 드래곤(D&D)’의 오픈소스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人디게임]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피드백, 두려워마세요”
사진=김상일 대표의 데뷔작 '인생게임'. 구글 플레이스토어 화면 캡처

Q. 말씀하신 것처럼 이 게임을 보면 TRPG에 대한 헌사가 곳곳에서 느껴지는데요. 특히 주사위를 굴려서 진행되는 전투방식도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맞아요. 저는 TRPG는 정말로 좋아하는데, 특히 GM(게임 마스터, 사회자) 역할을 선호합니다. 친구들에게 상황을 제시하고, 예기치 못한 시련을 주는 것도 가능하죠. TRPG를 진행할 때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굴려 사건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사위 눈이 6이 나오면 강한 상대를 무찌르는 것도 가능하죠. 모험가 이야기의 전투 방식도 여기에서 차용했습니다.

다만 TRPG는 플레이 시간이 긴 만큼 제대로 즐기려면 각 잡고 해야하기에 부담감도 큰 편입니다. 모바일에 TRPG 요소를 이식하면 부담감은 줄이면서, 재미는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험가 이야기는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물이죠.

Q. 대표님의 첫 작품인 '인생게임'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러고 보면 대표님은 스토리서사를 녹여내는 데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조금 쑥스럽습니다. 우선 인생게임은 ‘런(Run) 게임’ 방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인데요. 게이머의 모든 행동이 결말에 영향을 미쳐 캐릭터의 인생을 체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행복게이지가 0이 되거나, 담배 코인은 7개 이상 먹으면 게임 오버되는 거죠.

스토리 서사를 촘촘히 짜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지, 나의 행동에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를 바탕으로 상황별 알고리즘을 만들고, 이후 텍스트를 덧붙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이후에는 팀원들에게 보여줘서 평가를 받습니다. 요즘은 이용자의 평가도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人디게임]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피드백, 두려워마세요”
사진=스튜디오 휠의 '모험가 이야기'.

Q.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지난번 엎어진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지, 인생게임의 차기작을 준비할지 고민이에요. 우선은 모험가 이야기의 글로벌 서비스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 부산 인디콘텐츠 페스티벌과 구글 인디페스티벌도 참가할 계획입니다.

Q. 스튜디오 휠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스튜디오 휠이라고 이름을 지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끄럽지만,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딱히 이름을 생각한 것이 없었는데, 함께 일하는 친동생 이름이 상휘에요. 저는 상일이고요. '휘'와 '일'을 합쳐서 휠이 됐죠. 사실 할 일도 많은데 팀 이름을 고민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스튜디오 휠이 게임회사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건데요. 지난주에는 자동차 부품 업체인줄 알고 전화한 분도 있었어요(웃음).

Q. 그렇다면 지금의 멤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도 궁금합니다.

게임 학원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인생게임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팀을 나왔어요. 그 후 제가 직접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선은 같은 대학교 다니는 프로그래머를 만나서 그 분을 영입했고, 그 분의 아는 형도 프로그래머로 채용했어요. 지금은 처음 함께한 프로그래머는 회사를 떠났고, 두 번째로 들어온 '아는 형'은 여전히 남아있죠.

그래픽·아트의 경우, 원래 다른 분과 작업을 했는데, 서로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달았어요. 새로운 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그러다 집에 가보니 애니메이션 학과를 졸업한 동생이 졸작 마무리 작업 중이더라고요. 그래서 반강제로 영입했습니다. 멤버가 꾸려진 후에는 대구 달서구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부산에 있는 문화콘텐츠컴플렉스 글로벌게임센터에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Q. 인디게임 개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고등학생 시절 경찰을 하고 싶어 전공도 경찰행정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러다 군복무중 생각이 변했는데, 계급사회 적응이 생각보다 어려웠거든요. 만약 경찰이 돼도 재미없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디요. 부대에서 ‘뭘 하고 살지’라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손목신경손상을 당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오랫동안 누워 있게 됐습니다.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고민하다 보니 고등학생 때 ‘워크래프트3’ 맵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정말 맵 만들기에 미쳐있었고,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거든요. 게임을 만들면 질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부모님께 넌지시 말씀을 드렸고, 병장 때 진지하게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도 선뜻 수긍하셨어요. 어머니가 걱정하셨지만,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전역 후 아버지와 함께 게임 학원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아버지랑 온 것은 제가 처음이었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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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 문화콘텐츠컴플렉스 글로벌게임센터에 위치한 스튜디오 휠 사무실. 김상일 대표 제공

Q. 게임을 개발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대구에 있을 때 한창 지원사업을 여러 개 신청하던 시기에 있던 일인데요. 신청 사실을 까먹고 있을 때 갑자기 협회 측에서 “왜 안 오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결국은 떨어졌죠.

제작과정 에피소드도 있네요. 베타 출시를 하고 접은 게임이 있어요. 기한 내에는 만들어야하는데, 퀄리티가 많이 부족했죠. 고민 끝에 결국 출시는 했어요. 몰래 출시해서 유저를 모은 다음 업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운로드 수가 생각보다 많은 거예요. 그때 되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어요. 많은 사람이 미완성 게임을 보면 수치스러울 것 같아서 결국 내렸어요. 모두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지금은 약이 됐죠.

Q. 게임 개발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으셨는지요?

아뇨. 아직까지는 없어요. 수입이 안 나올 때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자금을 빌리는 것이 좀 스트레스였지만, 그 외에는 딱히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그리고 '정 안되면 혼자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Q.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호불호의 영역이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한 행동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피드백이 확실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유저에게 감정적인 흔들림을 줄 수 있어야 해요. 즉 희로애락이 담긴 것이죠. 물론 부정적인 방식으로 유저의 감정을 흔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더 라스트 오브 어스2'를 하다가 이런 경험을 했는데, 정말 좋지 않더라고요.

[人디게임]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피드백, 두려워마세요”
사진=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강한결 기자

Q. 인디게임 개발자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수익이 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까요. 투입되는 인건비가 적기에, 상대적으로 수익에 대한 부담감도 적어요.

다만 일정관리가 정말 힘들어요. 게임의 완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워요. '이정도면 됐다'는 정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경우가 많아,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힘들죠.

인력을 구할 때도 애로사항이 있어요.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규모 팀을 구성하면 그런 부분이 덜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외부인력을 채용할 때는 다르더라고요. 의사소통, 실력확인 부분 등에서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아요.

Q. 인디게임 개발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대구, 부산에 있으면서 느낀 것인데, 인력을 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지방에 회사가 많지 않은 이유를 조금 알게 됐어요. 현재 새로 뽑은 분들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아직 얼굴도 못 봤어요. 부산, 대구에 한정해서 뽑기에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어요. ‘이래서 판교, 서울로 가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인디게임이라지만, 기본적인 퀄리티는 갖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비주얼적인 부분은 첫인상을 좌우해요. 예를 들어 '병맛(B급 감성)' 콘셉트를 잡았다면, 확실하게 가야죠. 만약 욕심이 생겨서 여러 가지를 담고 싶어서 액션과 로맨스를 첨가하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됩니다. 일반 게이머가 기대하는 일정 수준의 장르적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인디게임 개발자를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일단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바랍니다. 어렵게 인디게임 개발을 하는데,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면 좀 아쉽잖아요. 대신 아까 말한 것처럼 퀄리티는 보장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획도 중요하지만 추후 피드백을 통한 가지치기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기 그릇에 맞지 않은 과한 기획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결국 내가 얼마나,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자기객관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트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특히 에고가 강한 편인데, 필요하다면 과감히 에고를 버리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이런 연출이 빠지고, 이런 컷 신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큰 뼈대를 제외하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요. 스스로는 '나는 열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다를 수 있거든요. 저 역시 그런 성향이 조금 강했는데,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출시 전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는 것을 겁내는 분들이 많은데, 어차피 보여줄 것은 그냥 시원하게 보여주고 비판에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비판이 무서워서 아이템을 묵히는 것보다는 화끈하게 지적을 받고 문제점을 수정하는 게 더 좋아요.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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