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잊고 지낸 10대 시절 악몽 끄집어내는 ‘최선의 삶’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8-25 06:19:02
- + 인쇄

영화 '최선의 삶'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다른 차원의 시간이 흐른다. 세 명의 친구는 가출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거리를 떠돌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잔다. 이들을 찾는 사람도, 특별히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내키면 다시 집에 줄줄이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집을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서서히 멀어진다. 세 명의 10대 청소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최선의 삶’(이우정 감독)은 2000년대 초 지방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단짝 고등학생 강이(방민아), 소영(한성민), 아람(심달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세 사람은 어느 날 집을 나와 서울로 향한다. 세상은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고통스러워지자 소영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세 사람 모두 귀가했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전과 분명 달라져 있었다.

잊고 지낸 유년 시절 한 페이지를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 단짝 친구 관계에 생긴 균열에 집중하는 점에서 영화 ‘파수꾼’(감독 윤성현)이 떠오른다. 첫 인상만 그렇다. ‘최선의 삶’이 보여주는 10대들의 세계는 어둡고 무겁다. 특별한 사건도, 감정의 고조도 없다. 아무도 영화를 앞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대신 하루하루 인물이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욕망도, 희망도 사라진 인물들의 멍한 눈빛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영화 '최선의 삶' 스틸컷

맥락이 잡히지 않는 전개는 차라리 꿈같다. 누군가의 꿈, 혹은 꿈처럼 희미한 과거 기억을 들여다보는 체험에 가깝다. 그 꿈은 악몽이다. 가장 힘들었고 막막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시기의 자기 고백이다. 영화가 재현하는 시공간 배경과 인물들의 정서에 적응하면, 이야기가 마치 내 기억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어른의 논리와 완전히 다르게 굴러가는 ‘그 시기’의 세상을 충실히 구현해냈다. 세세한 이야기와 설명, 이유를 지우고 인물과 반응만 남았다. 당시엔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공백이 많았다. 지금 돌이켜봐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분명 겪었지만 잊어버린 이야기, 혹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처와 악몽이 영화의 형태로 눈앞에 나타났다. ‘벌새’와 ‘파수꾼’이 그랬듯, 아주 사적이고 숨기고 싶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주는 힘이 존재한다. ‘최선의 삶’이 첫 장편 영화인 이우정 감독은 그 힘을 위로와 용기라고 부른다. 영화를 보는 관객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되지 않을까.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방민아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이야기에 스며들게 돕는다. 새 얼굴인 배우 한성민의 존재감이 눈에 띄고, 단단히 중심을 잡는 심달기는 언제나 반갑다. 지난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KTH상, CGK&삼양XEEN상)에 올랐고,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선 새로운선택상을 받았다. 방민아는 최근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 라이징스타상을 수상했다.

다음달 1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