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고 왜곡된 기억, 이렇게 추악할 수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쿡리뷰]

기사승인 2021-10-14 0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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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고 왜곡된 기억, 이렇게 추악할 수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쿡리뷰]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처음엔 평범한 시대극인 줄 알았다. 한 남자가 우정을 나눈 친구와 감정적인 다툼을 벌인 끝에 화해한다. 아내가 친구에게 강간당한 사실에 분노해 결투를 신청한다. 두 사람은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말 위에 올라 한 판 대결을 벌인다.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 해도 믿을 진부한 이야기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난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가 다시 펼쳐진다. 앞서 나온 것과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지만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르다. 비범한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이하 ‘라스트 듀얼’)의 진짜 시작이다.

‘라스트 듀얼’(감독 리들리 스콧)은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장(맷 데이먼)과 그의 친구 자크(아담 드라이버), 그리고 장의 부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세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세 사람의 시선으로 하나씩 보여주는 영화다. 돈을 벌기 위해, 국가를 위해 전쟁에 나서는 성주의 아들 장은 영주 피에르(벤 애플렉)와 갈등을 겪는다. 장이 물려받을 줄 알았던 성은 피에르와 가까운 자크에게 가자 두 사람의 사이도 틀어진다. 시간이 흘러 둘은 화해했지만, 마르그리트는 장이 집을 비운 사이 자크에게 강간당했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완전히 다른 색으로 모습을 바꾸는 영화다. 같은 이야기를 3부로 나눠서 보여주는 이유, 영화 ‘라쇼몽’(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형식을 취해야 했던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의 형식이 곧 긴장감을 만들고 집중하게 하는 동력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범죄 사건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다. 작품의 주제가 명확해지는 마지막 파트에 이르면 지금까지 본 것을 완전히 잊게 하는 충격 실체가 나타난다.

지워지고 왜곡된 기억, 이렇게 추악할 수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쿡리뷰]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컷

문제는 세 가지 시선의 이야기 모두 누군가에겐 굳건한 진실이라는 점이다. ‘라스트 듀얼’은 자막을 통해 세 이야기 중 가장 진실에 가까운, 진실이라 믿어야 할 파트를 분명히 지목한다. 그렇다면 관객은 혼란을 빠르게 잠재우고, 다른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이야기의 청자로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재판관처럼 지켜보던 관객은 어느 순간 사건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참여자로 입장이 바뀐다.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은 범죄 사건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일부 얘기만 듣고 판단한 주변 사람이 진실을 목격한 이후 느끼는 죄책감 체험에 가깝다. 재해석은 죄책감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매체가 아닌 ‘영화’라서 가능한 경험이라는 점이 놀랍다.

700년 전 이야기를 70년 전 기법으로 그린 ‘라스트 듀얼’이 향하는 곳은 현재다. 야만과 무지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믿을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곧바로 연결된다. 아무 잘못 없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느끼는 죄책감과 주변 시선, 재판 과정 등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흐름이다. 왜곡된 기억을 가진 가해자가 주장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피해자 증언과 같은 선상에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함축한 교육 영화이기도 하다. 제목처럼 기사들이 멋진 결투를 벌이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굿 윌 헌팅’ 이후 20여 년 만에 공동 작가로 각본 작업에 참여한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은 왜 다시 뭉쳐야 했는지 입증했다. 배우로도 열연하며 지금 시대에 ‘라스트 듀얼’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두 사람 외에도 미묘한 표정 변화와 말투, 제스처를 매번 다르게 연기한 배우들이 돋보인다. 특히 BBC 드라마 ‘킬링 이브’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조디 코머의 연기에 주목할 만하다.

오는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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