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보조인력 ‘PA’ 제도화 앞서 업무 범위 정리해야

복지부, 진료지원인력 관련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공청회 개최

기사승인 2021-10-27 17: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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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보조인력 ‘PA’ 제도화 앞서 업무 범위 정리해야
사진=보건복지부 유튜브 캡처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27일 진료지원인력 관련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진료지원인력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왔다.

공청회는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로 불리는 진료지원인력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이 개최했다. 진료지원인력은 의료기관에서 서비스 질을 향상하고, 진료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운영하는 인력이다. 의사 고유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불법·무면허 의료행위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국내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진료지원인력은 약 1만명으로 추산된다.

공청회에 참석한 류근혁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PA인력이 특정 의료기관이나 진료과목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보다 명확한 업무적 판단과 자신감 있는 업무 수행이 가능한 환경을 희망하고 있다”며 “현실의 제도는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합리적 의료체계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에 중요한 문제”라며 “PA인력의 업무 범위 설정과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적절한 기준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김가은 계명대학교 간호대학 교수가 진료지원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진료지원인력의 채용, 처우, 배치, 업무, 운영·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실시됐다.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일까지 보름 동안 전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41곳과 363명의 진료지원인력이 응답했다. 

지금까지 진료지원인력의 현황이 제대로 파악된 사례는 없었다. 비공식적인 제도인 만큼, 개별 의료기관이 제각각 기준을 적용해 진료지원인력을 운영했다. 주로 간호사 가운데 ‘PA간호사’로 임명된 인원이 의료법상 의사가 직접 해야하는 업무를 대신 수행했다.

조사 결과 진료지원인력의 93.9%에 해당하는 341명은 간호사 또는 전문간호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외 응답자들은 임상병리사 14명, 응급구조사 2명, 간호조무사 3명, 기타 3명 등으로 조사됐다. 진료지원인력의 192명(52.8%)은 10년 이상의 총 임상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임상 경력이 3년차 혹은 1년 미만인 응답자도 46명(12.6%)으로 적지 않았다. 의료기관 과반(51.2%)은 진료지원인력 확보를 위해 별도 채용 절차를 두지 않았다.

진료지원인력은 대부분 간호부 또는 진료부에 소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소속 부서와 관리 부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진료지원 인력을 지칭하는 말도 통일되지 않아 ‘임상전담’, ‘진료지원’, ‘PA’ 등의 명칭이 혼용되고 있었다. 진료지원인력을 위한 별도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의료기관의 41%가 시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진료지원인력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68%가 시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진료지원인력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었다. 주요 업무현황은 대부분 검사 보조 업무였지만, 의사에게만 허용된 의료행위를 맡는 사례도 흔했다. 조사에 참여한 진료지원인력의 19.3%는 침습적·출혈 가능성이 있는 검사를 수행한다고 답했다. 17.8%는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검사 및 수술동의서를 받았고, 50.1%는 보호자 교육 및 상담을 도맡았다.  36.9%는 수술실에서 보조가 아닌, 퍼스트 또는 세컨드 어시스트 역할을 수행했다. 처방(51.5%)과 진단서·의무기록서·협진의뢰서 작성(28~48%) 업무를 수행한 응답자도 다수였다. 

윤 교수는 “진료지원인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 자격기준, 업무범위를 제시해야 한다”며 “인력의 책임·권한, 관리부서 등을 명확히 설정해 제도와 법적 측면에서 보호할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명확한 업무범위 규정 절실… 간호사 확충·정부 관리감독 중요 

공청회에 참석한 의료계 전문가 및 종사자들은 ‘명확한 업무 범위’ 규정이 관건이라며 입을 모았다. 간호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등 진료지원인력으로 활동하는 직종이 의사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고, 정당한 업무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입원 전담전문의, 수술실 전담전문의 등의 제도를 도입해 의사 부족 문제를 점차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범위의 기준을 규정하는 작업은 면허권과 관련된 매우 예민한 사항”이라며 “복지부는 이 과정에서 의료계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의 감독 및 지시 없이 진료지원인력이 수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없어야 한다”며 “진료지원인력 문제를 전문간호사제와 연계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상 불법을 허용하는 상황도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성규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진료지원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명확히 판별할 수 있도록, 명확한 용어가 사용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진료지원인력 문제는 간호사와 의사 이외에 다양한 직종이 얽혀 있으므로 기존 의료법뿐 아니라 다양한 법률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련병원 수술실에서 퍼스트·세컨드 어시스트는 교육 목적으로 수련의가 맡는 업무인 반면, 수련병원이 아닌 의료기관에서는 단순 보조 업무”라며 “진료지원인력에 허용할 업무 범위를 정할 때 각 병원의 환경 차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문숙 대한간호협회 부회장은 “진료지원인력으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진료과 소속이지만 소속감을 얻지 못하고 승진에서도 누락된다”며 “전문적인 교육 기회가 없으며, 법적 보호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지원인력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정해 표준화하고, 범위 내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교수, 의사 등의 부당한 업무 지시는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부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의료기관 현장 감시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지금까지 병원에서는 진료지원인력이라는 명목 하에 의사의 아이디로 간호사가 대리처방을 하고, 인공호흡기와 수술 후 카테터 관리도 간호사가 하는 상황이 흔했다”며 “원칙과 상식에 따르면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의사가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속됐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전공의 유무에 따라 간호사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는 전공의가 없는 병원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진료지원인력의 운영과 관리는 개별 의료기관의 책임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책임으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선영 전국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진료지원인력 문제가 오랫동안 방치된 만큼, 현장과 법의 괴리가 크다“며 “당초 진료지원인력은 전공의 없는 과에서 생겨났지만, 지금은 전체 과에 분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들이 진료지원인력을 의사로 착각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해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불신이 생길 위험도 상존했다”며 “의료법상 두루뭉술한 업무구분 자체를 명확히 고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 정책국장은 “별도 직종을 신설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업무 분야를 쪼개서 중요하지 않은 직무만 수행하는 집단이 생기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옥란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교육선전국장은 “의료기관이 진료지원인력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진료지원인력 활용 가능 조건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진료지원인력이 간호사인 만큼, 특정 과에서 진료지원인력을 선발할 때 활용할 간호사 임상 경력 기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사공급 부족, 진료지원인력 보상체계 및 경력 인정 체계 부재, 간호사 부족 해소가 진료지원인력 문제 해결의 대전제”라고 강조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문제의 본질은 진료의사 부족“이라며 “직능과 권한 다툼의 문제로 진료지원인력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부족해 발생하는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진료지원인력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지난해 중단된 의대 신설 및 정원 확대 논의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지난해 기준 1만여명의 정체불명 인력이 의사 대신 환자를 봤지만, 이들의 의료행위는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하다”라며 “하지만, 당장 1만여명의 인력이 기존에 수행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상당한 의료 공백이 발생해 환자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진료 기피과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진료보조인력을 도입하면, 의사가 아니라 진료보조인력만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회진과 마취 등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의사가 담당해야 한다”며 “정부가 제도 시행에 앞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진행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의사 아닌 자가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건의료 면허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허용해도 되는지 등이 진료지원인력 문제의 쟁점”이라며 “진료지원인력이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현실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대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경영상 인건비 문제, 절대적인 의사 인력 부족 문제 등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병원, 의료인, 환자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양정석 간호정책과장은 “진료지원인력 문제를 풀어내는 데 핵심 주제는 환자 안전을 위한 의료인력의 협업체계 구축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양 과장은 “진료지원인력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의 사후관리와 감독 및 제재의 중요성이 강조된 만큼, 일방적인 권한 및 책임 위임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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