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채무자 첫 신상공개… “대체지급제 필요”

명단공개·출국금지·면허정지까지 절차 길고 복잡해
정부가 양육비 지원 후, 채무자에게 징수하는 방안 고려해야

기사승인 2021-12-20 16: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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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채무자 첫 신상공개… “대체지급제 필요”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 채무이행 회피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양육비해결모임 제공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이행법)이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양육비 채무자의 채무이행을 압박할 수단이 확보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양육자와 자녀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기 위한 ‘대체지급’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신상정보 첫 공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최근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 2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인천 소재 직장인 홍모씨(49세)는 10년8개월 동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홍씨의 총 채무액은 1억2560만원이다. 충남 부여군에서 생태체험 시설을 운영하는 김모씨(54세)는 14년9개월 동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김씨의 총 채무액은 6520만원이다.

홍씨와 김씨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아 지난 7월13일 이후 법원으로부터 감치 명령을 받았다. 감치 명령은 법원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사람을 구치소나 유치장 등에 가두는 조치다. 홍씨와 김씨가 감치명령 이후로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자, 채권자인 양육자들이 여가부에 명단공개를 신청했다. 

여가부는 홍씨와 김씨에게 3개월의 의견진술기간을 줬다. 하지만 이 기간 둘 모두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여가부는 이달 14일 제22차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19일부터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홍씨와 김씨의 △실명 △직업 △생년월일 △주소 또는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양육비 채무액을 게시했다.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신상정보가 공개된 채무자는 김씨와 홍씨가 처음이다. 앞으로 1~2개월 내 9명의 채무자 신상정보가 잇따라 공개될 예정이다. 여가부는 지난 10월 4건, 지난달 5건 등 총 9건의 양육비 채무자 명단공개 신청을 접수해, 채무자들에게 공개 예고를 통지한 상태다. 이들이 양육비를 이행하거나, 양육비를 주지 못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통지 3개월 후 명단이 공개된다. 

명단공개·출국금지·면허정지, 효과 충분할까

이로써 양육비이행법상 △명단공개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등 3가지 처분이 모두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들 처분은 올해 1월12일 신설됐는데, 지난 10월11일 채무자 2명이 최초로 출국금지 됐다. 같은달 28일 채무자 6명의 운전면허가 처음으로 정지 처분 대상으로 결정됐다. 아울러 여가부는 이달 16일 추가적으로 채무자 7명에 대한 출국금지, 10명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각각 법무부와 경찰에 요청한 상태다.

양육비 채무자를 합법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은 획기적인 변화다. 처분이 신설되기 전 양육자들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통해 채무자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폭로했다. 해당 사이트를 통해 약 1000건의 양육비 채무이행이 이뤄졌지만, 사이트 운영자는 채무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검찰 역시 운영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처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여가부의 명단공개는 배드파더스와 달리, 채무자의 사진을 포함하지 않는다. 운전면허 정지 처분은 지속 기간이 100일에 불과하다. 또한 채무자의 직업이 버스·택시기사 등 운전면허가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출국금지는 △채무액이 5000만원 이상인 사람 △3000만원 이상이면서 최근 1년간 국외 출입 횟수가 3회 이상이거나 국외 체류일수가 6개월 이상인 사람 등으로 적용 대상이 한정된다. 채무액 기준이 높고, 출입국 횟수 기준이 까다로워 다수의 채무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지속 기간도 6개월에 그친다.

아울러 명단공개, 출국금지, 면허정지는 모두 ‘법원으로부터 감치명령을 받은 이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채무자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법원의 감치명령이 떨어지면, 양육비 채권자의 의사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감치 또는 처분이 실행되는 방식이다. 즉,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고소와 재판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이들 3가지 처분을 통한 채무이행 압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양육비 선 지원, 후 징수해야”

양육자와 자녀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양육비 채무자와 법정공방을 벌이는 동안 생활고를 겪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양육자에게 자녀 1인당 20만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원 기간은 총 9개월이며, 3개월 연장할 수 있어 최장 1년에 그친다. 최근 명단공개 처분을 받은 홍씨와 김씨의 채무 불이행 기간 10년8개월, 14년9개월과 비교하면, 지원 기간은 턱없이 짧다.

이준영 변호사는 “양육비 채권자들은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형사고소를 하고, 경찰서에 출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을 도와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 과정은 물론, 명단공개·출국금지·면허 정지 처분 등을 신청하는 행정 절차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변호인 없이 양육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며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 가운데 실제로 구치소에 감치된 사례도 드물다”고 토로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양육비를 지원하고, 차후 양육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양육비를 징수하는 방식의 대체지급 제도가 양육자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면허 정지나 명단 공개는 채무 이행을 재촉하는 영향력이 강하지 않다”며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어려운 감염병 시국을 고려하면, 출국금지 처분 역시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여가부는 현재 마련된 채무이행 압박 수단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명단공개 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의견진술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더 단축하고, 출국금지 채무금액 기준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