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첫돌...존폐 논란 휩싸인 공수처

기사승인 2022-01-17 1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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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첫돌...존폐 논란 휩싸인 공수처
정부 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진=박효상 기자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무거운 분위기에서 출범 일 년을 맞게 됐다.

공수처는 오는 21일 1주년을 맞는다. 1주년 기념행사는 외부 노출 없이 자체 행사로 진행하기로 했다. 외부 인사 초청 없이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대표 공약으로 국민 기대를 받으며 출범한 것과 대비된다.

공수처의 지난 1년 성적표는 초라하다. 접수된 사건 대다수가 공수처를 거쳐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공수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21일부터 12월21일까지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 2766건 중 검찰(1244건), 경찰(394건), 군검찰(4건) 등 약 60%가 이첩됐다. 공수처가 입건한 사건은 24건이다. 전체 접수 대비 1%에도 못 미친다. 자체 기소 사건은 0건이다. 공수처는 검사와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에 대해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권한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셈이다.

공수처 1호 사건이라는 첫 단추부터 잡음이 일었다. 공수처는 지난해 5월  ‘공제 1호’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특별채용 의혹을 택했다. 조 교육감이 지난 2018년 7~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해직교사 등 5명을 특정해 특별채용을 강행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조 교육감 사건을 상징적 1호 사건으로 택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수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점에서다.

애초부터 기소권이 없는 사건을 선택한 배경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조 교육감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기소한 상태다.

‘이성윤 황제 조사’ 사건은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공수처는 지난해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 금지 사건’ 피의자인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조사 과정에서 그를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셔 조사한 뒤 조서도 남기지 않았다. ‘황제 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던 김 처장은 결국 “공정성 논란이 일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게 처리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씁쓸한 첫돌...존폐 논란 휩싸인 공수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쿠키뉴스 자료사진

언론과 정치인, 민간인을 망라하는 통신자료 조회는 공수처에 깊은 내상을 입혔다. 공수처는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일반화된 수사기법이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자인한 공수처가 잘못된 수사 관행을 답습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처장 사퇴와 공수처 해체까지 들고 나섰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일각에서는 광범위한 통신조회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공수처에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여권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3일 조선일보 유튜브에 출연해 공수처에 각종 논란이 이어지는 데에 “‘이러려고 우리가 이렇게 했던가’(공수처를 만들려 했던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30년 숙원을 거쳐 (공수처가) 생겼는데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공수처가 본래 기능대로 잘 돼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공수처가 지난 1년간 설립 취지에 맞게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고 검찰을 견제했는지 의문”이라며 “공수처장 임기가 3년이니까 이제 30% 정도 지난 셈이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인력에 비해 너무 많은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무리하게 욕심을 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특히 “무작위 통신자료 조회는 엄청난 실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봤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는 “공수처가 첫발을 떼는 과정에서 조직 구성에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수사 경험이 많은 인력들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사 역량에도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공수처 조직이 200여 명 정도로 왜소하다 보니 지나치게 정치권 눈치를 보고 있다. ‘검찰을 견제한다’는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소신껏 수사하는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이번 해에는 예산도 증액이 됐다. 설립 1년이 됐기 때문에 조직의 존재 의의를 이제는 국민에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보 기능 강화도 언급했다. 오 전 교수는 “공수처에서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방향이라던가 진척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의 알 권리를 해소하는 차원뿐만 아니다. 공수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에게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공수처에 대한 국민 지지와 호응까지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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