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일한다...기업들, 조직문화 개선 나선 까닭은

삼성전자·CJ 등 다수 기업 직급 간소화 
LG엔솔, 임직원 간 ‘님’ 호칭법 도입
코로나 팬데믹 영향 조직변화 필요성 더 빨리 체감
“수평적 조직문화가 곧 기업 수익”

기사승인 2022-01-19 0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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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일한다...기업들, 조직문화 개선 나선 까닭은
서울 여의도 LG에너지솔루션 파크원 본사 63층에서 MZ세대 직원들과 소통하는 권영수 부회장 모습.  LG에너지솔루션

“‘홍길동’님, 지난주 회의 때 보고했던 XX 파일 좀 메일로 넘겨줄래요?”
“네, ‘전우치’님 메일 보냈습니다”

“‘○○○님 말씀도 공감합니다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다. 상명하복식 문화에서 수평적인 회의방식을 넘어 호칭법까지 달라지고 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상무-전무-사장 등 8단계를 넘는 직급은 팀원-팀장-임원 등으로 간소화하는 추세다. 단순히 과거 ‘꼰대 문화’를 밀어내는 수준을 넘어 생존을 위한 변화라는 분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다수 기업이 최근 임원 직급 체계를 간소화했다. 삼성그룹은 전무와 부사장 직급을 부사장으로 일원화했고, CJ는 사장부터 상무대우까지 6개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로 합쳤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모든 임직원이 ‘님’이라는 단일 호칭 체계를 쓴다.

과거에도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많은 기업이 조직 개편 등 조직문화 개선에 적극 나선 경우는 드물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세대 간 갈등을 조정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렸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은 과거부터 MZ세대 업무 방식에 주목했고, 점차 개선하려는 노력은 해왔지만,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급격하게 바뀐 측면이 있다”며 “팬데믹 이전만 해도 개념만 있었지 IT기업조차 실제 실행하지 않았던 재택·원격 근무를 거의 모든 기업들이 강제 경험하면서 조직 변화 필요성을 몸소 느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평 문화가 수익과 연결된다는 점도 기업들이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이유 중 하나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고 여기에 적응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 IT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시가총액 총합은 2018년 39조원 수준이었으나 현재 97조원에 달한다. 수평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소통을 통해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 나가면서 기업 경쟁력도 함께 높아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효율성을 강조한 수직적 기업문화가 과거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수평적인 문화가 돈을 벌어다 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며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IT기업이 다른 기업 표준이 되고, 그들이 가진 수평적인 기업문화도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 직급 간소화·호칭 개편 등도 이러한 모습 중 하나다”고 분석했다.

유능한 인재 유치를 위한 초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는 MZ세대는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거부감이 크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는 세대로 익히 알려졌다. 직무 외에도 사내 분위기, 복지 여건 등을 보고 회사를 선택하는데 이들을 포섭하기 위한 사전 작업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수 인재 확보는 예전부터 중요한 기업 기치였고 최근에는 연공서열을 타파한 다양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려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며 “다양한 기업이 MZ세대 직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성과급과 복지 개선 등을 논의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계급장 떼고 일한다...기업들, 조직문화 개선 나선 까닭은
기업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근무가 권장되자 유연 근무제를 도입해 회사에 직접 출근하지 않고도 거점 오피스에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거점오피스 '을지로 금세기빌딩'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포스코 직원의 모습.  포스코

“제도보다 수평적 문화 정착 더 시급”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직급 개편·호칭법 변화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수평적 문화 정착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여러 기업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나섰지만 정착시키지 못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와 포스코, KT는 한때 직원 호칭을 ‘매니저’로 단일화하면서 직급파괴에 나섰지만 수년 내 다시 회귀했다. 직급 간소화로 호칭은 바뀌었지만, 실질적으로 업무 형태는 과거와 같아 개선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은형 교수는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는 그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가 기반이 돼야만 성공한다. 마인드는 똑같은데 청바지 입는다고 신세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단 문화가 바뀌도록 노력해야 하고 경영자와 선배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코로나 시대 유연근무는 MZ세대가 원하는 업무 방식으로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생각보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만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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