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바닷속에서도 우리는 [인터뷰]

기사승인 2022-01-20 06: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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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바닷속에서도 우리는 [인터뷰]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장면 1. 호쾌하게 10점을 쏘아 올렸다. 우리나라 여성 양궁 선수가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선수의 짧은 머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페미’ 아니냐”는 검열이 따라붙었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면 2. 유력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를 공약했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격하게 환영했다.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여성들이 중책을 맡자 반발이 커졌다. 여성 친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결국 임명장을 반납해야 했다.


여성주의 혐오가 온라인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들도 여성혐오를 정당화 하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풍파를 가장 전면에서 겪는 이들이 있다. 여성단체 활동가들이다. 

쿠키뉴스는 18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피해지원팀 무화(가명) 활동가를 만났다. 한사성은 지난 2017년 사이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여성단체다.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하고 텔레그램 N번방 사태 대응을 주도했다. 9명의 활동가가 피해지원과 운동기획, 운영사업 등을 진행한다. 피해지원팀은 성폭력 피해자의 수사·법률 및 의료비 지원, 불안피해 모니터링 등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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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무화 활동가.   사진=박효상 기자 
-여성주의에 대한 ‘사이버불링’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지난달 여성단체에서 일부 후보들의 공약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선에 여성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날 신남성연대에서 집회 장소에 찾아왔다. 여성들의 발언에 맞춰 야유를 보냈다. 위협도 있었다. 여성운동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면서 동력을 얻는다. 여성의 목소리마저 제한하려는 것으로 여겨졌다.
 
개인적인 불안도 크다. 신상이 털리거나 모욕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이나 이름 등이 알려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특히 최근에는 위험을 느끼며 운동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여가부 폐지, N번방 방지법 재개정 등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정치권에서 표를 얻기 위해 남성 대 여성 갈등 구조를 조성한다고 생각한다. 주장 근거도 사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팩트체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문제가 많다.
 
피해지원 현장에도 영향을 준다. 활동가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예산이 줄어들지 않을까 마음 졸이고 있다. 현재도 넉넉하지 않다. 9월쯤 되면 수사·법률 및 의료비 지원 예산이 부족해진다. 피해자는 수사·법률 및 의료비 지원을 통해 보다 편하게 피해를 증언할 수 있다. 지원이 막히면 피해자가 피해를 이야기하지 못 하고 고립되는 상황이 올까 우려된다.   

-불안 속에서도 한사성 활동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성폭력 피해가 전 연령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2030세대 중 피해자가 집중돼 있지만 상담 요청자 중에는 40~60대도 있다. 10대 피해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불법촬영과 비동의유포, 사이버불링, 합성사진유포, 스토킹 등 여전히 심각하다.
 
한사성에는 일주일에 20건 정도의 상담 전화가 온다. 유관기관 상담소와 디지털성범죄피해지원센터에서 피해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현재 3명의 활동가가 각각 10명의 피해자를 상담·지원하고 있다. 각각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현재 인력으로는 맞춤형 지원이 어려워 신규 상담을 잠시 중단했다. 재정비 후 3월부터 신규 상담을 재개할 방침이다.
 
혐오의 바닷속에서도 우리는 [인터뷰]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담하면서 힘들 때가 있다면 

힘든 것 보다는 화가 날 때가 더 많다. 피해자들은 종종 신고를 주저한다. 수사 기관의 태도 때문이다. 일부 경찰은 “이런 거는 신고할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피해를 사소화한다. “증거가 없으면 잡기 힘들다”라며 신고 의지를 꺾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힘이 빠진다. 일부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증거 수집을 하고 애를 썼음에도 가해자의 “고의가 아니었다”는 변명이 법정에서 수용되기도 한다.
 
-상담 전후 피해자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상담 후 점점 좋아지는 신호가 보인다. 방에서 나오지 않던 피해자가 모임에 나가거나 일자리를 구한다. 전문적인 의료 상담에 나선다. 활동가들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려는 과정을 보면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사성을 비롯한 여성단체의 활동으로 N번방 방지법 등 사이버 성폭력 방지를 위한 법이 시행됐다. N번방 방지법에 대한 평가는

아직 시행 초기라 어떠한 효과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의미 있는 법이다. 사이버 성폭력은 성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N번방 방지법을 통해 이러한 점이 개선됐다. 불법촬영물 소지죄,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죄 등이 신설됐다. 지인능욕이나 딥페이크 같은 허위 영상물 유포도 처벌 가능해졌다.

법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불법촬영물 소지죄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적용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힘든 상황이지만 여성들의 연대가 빛을 발하고 있다. 향후 여성연대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단일한 여성연대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여성단체들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도 각기 다른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여성주의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천차만별 여성들이 모여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지 치열하게 논쟁하길 바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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