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처음 이름은 김대중… 피하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1-27 06: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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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처음 이름은 김대중… 피하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배우 설경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똑똑하고 야망으로 가득 찬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는 선거에서 매번 지기만 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를 찾아간다. 아무 인연도 없는 이북 출신 일반인을 한 번에 받아줄 선거 캠프는 1960년대에도 드물었다. 국민의 마음을 듣고 진심으로 다하는 것 대신 얄팍한 선거 전략이 필요하다는 서창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말로 대화를 나눈 김운범은 결국 그를 품는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긴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빛과 그림자가 되어 더 높은 곳으로 함께 나아간다.

김운범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델로 탄생한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선거 전략가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가 나왔다. 지난 18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배우 설경구는 전작 ‘불한당’을 찍을 때 이미 변성현 감독에게 ‘킹메이커’ 대본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엔 거절했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던 인물이었어요. 처음엔 이름이 김대중이었거든요. 부담돼서 이름을 바꿔달라고 했죠. 그래도 편한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이름이 바뀌면서 부담을 덜긴 했지만 그분이 연상되는 역할이잖아요. 영화가 공개되는 순간에도 어떻게 볼까 싶었고요. 목포 사투리 연습을 꽤 많이 했지만, 그분을 모사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제 방식대로 하려 했고 접점에서 타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설경구 “처음 이름은 김대중… 피하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킹메이커’에서 김운범이 뭔가를 하는 장면은 의외로 적다. 주로 서창대와 그를 둘러싼 참모들이 일을 벌이고 김운범은 가만히 지켜보는 역할에 가깝다. 김운범의 매력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보다 덜어내면서 연기했다.

“인간 김운범에 집중했어요. 김운범은 소탈하고 리더십이 강하고 카리스마도 있어요.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죠. 전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목이 ‘킹메이커’이듯이 김운범은 ‘킹’이 되려고 하는 인물이에요. 대의명분이 있고 뚜렷한 소신이 있어야 하는 사람인 거죠. 굳이 연기로 해야 하거나 주어진 장면도 많지 않았어요. 그냥 김운범은 그런 사람이라는 큰 판을 만드는 거죠. 제가 뭔가를 보여주는 건 없었습니다.”

설경구에게 촬영장은 희노애락이 모두 존재하는 곳이다. 그는 “(연기가) 잘됐을 땐 애처럼 좋아하다가도 안 풀리면 죽고 싶다”고 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도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연기를 하며 행복하지만 그 안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이번에도 스스로의 방식으로 김운범을 만들어나갔다.

설경구 “처음 이름은 김대중… 피하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배우 설경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들이 경찰 역할을 맡으면 경찰들을 꾸준히 만나서 얘기를 듣고 참고하잖아요. 전 그게 안 돼요. 영화 ‘공공의 적’(감독 강우석)을 찍을 때 강력계 형사를 만나라고 했지만 거부했어요. 전 그분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배우 같아요. 제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게 있었으면 하는 느낌인 거죠. 실화를 바탕으로 해도 제가 갖고 있는 걸로 풀어내는 걸 재밌어해요. ‘킹메이커’도 참고한 영화는 없어요. 오히려 유튜브를 봤어요. 김 전 대통령 연설장면을 참고는 했습니다.”

‘킹메이커’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촬영된 영화다. 개봉 시기를 잡느라 미루고 미룬 끝에 지난달 29일로 개봉일을 잡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개봉이 늦춰졌다. 설경구는 “대선에 맞춰서 만든 영화가 아닌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선균 배우와 제가 ‘킹메이커’ 홍보를 많이 했어요. 유튜브와 방송도 출연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한 달 연기되면서 붕 떠버렸어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3주 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안하지만 다 해버려서 할 게 없더라고요. 어느덧 개봉이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아요. 참 어렵더라고요. ‘해적: 도깨비 깃발’이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비교하면, ‘킹메이커’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한국영화로서 ‘해적: 도깨비 깃발’과 서로 응원해야 하는 위치 아닌가 생각해요. 같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