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망하면 어때? 즐기자!”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1-28 06: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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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망하면 어때? 즐기자!” [쿠키인터뷰]
그룹 네이처. n.CH엔터테인먼트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서울 잠원동 연습실. 안무 연습에 한창이던 그룹 네이처 멤버 로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불러 모은다. “(데뷔한 지) 3년이 지났어. 미안하지만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해.” 해체를 암시하는 폭탄 발언에 멤버들도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활동을 안 하니까 멤버들도 지치고….”(루) “무대에서 빛나고 싶어서 한국에 왔는데, 지금은 화장실 조명이 나보다 더 빛나.”(오로라) 네이처의 신곡 발매기를 다룬 이 모큐멘터리(허구 상황을 실제처럼 표현한 영상) 제목은 ‘네이처 이대로 처 망할 수 없다’. 멤버들은 이 영상에서 배수진을 치고 소속사 대표를 찾아가 신곡 발매 기회를 얻는다.

‘생계형 아이돌’ ‘반지하돌’ 등 자학성 별명을 붙인 아이돌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처망돌’이라는 과격한 이름은 처음이었다. 멤버들도 동의한 표현인지, 혹 상처받지 않았는지 걱정하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더니 멤버 소희가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려줬다. “저희 생각은 이래요. ‘안 되면 뭐 어때? 망하면 뭐 어때? 그냥 즐기는 거지!’” 곁에 있던 루는 “처음 모큐멘터리 제목을 알았을 땐 속상했다. 팬들도 놀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상으로 네이처를 알게 됐다는 반응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발매된 ‘리카 리카’(RICA RICA)는 네이처의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돋보이는 노래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흥을 돋우고 당찬 가사로 희망을 준다. 루는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인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줄 노래”라고 자신했다. 트로트와 댄스곡을 섞은 듯한 멜로디는 강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가수 장윤정의 ‘어머나’, 그룹 슈퍼주니어 T의 ‘로꾸거!!!’ 등을 탄생시킨 작곡가 윤명선의 솜씨다. 로하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노래다. ‘수능 금지곡’을 노리고 있다”며 웃었다.

네이처 “망하면 어때? 즐기자!” [쿠키인터뷰]
음반 제작을 위해 회의하는 네이처. 유튜브 ‘네이처 이대로 처 망할 수 없다’ 캡처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네이처는 어쩌다 ‘망돌’을 자처할 만큼 내몰렸을까. 코로나19가 문제였다. 2018년 데뷔한 네이처는 노래 ‘알레그로 칸타빌레’(Allegro Cantabile), ‘썸’, ‘내가 좀 예뻐’ 등을 내며 바쁘게 지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무대를 잃었다. 막막한 마음을 멤버들과 나누다가 눈물바다를 이뤘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때마다 이들은 ‘오히려 좋아!’를 되뇌며 스스로를 일으켰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어요.” Mnet ‘프로듀스101’과 ‘음악의 신’으로 얼굴을 알린 뒤 2019년 네이처에 합류한 소희는 이렇게 말했다. “바쁠 땐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지치거든요. 쉬는 동안 멤버들과 뭉쳐서 ‘잘 될 거야’ ‘즐기자’고 힘을 모았어요.”

팬덤 리프 역시 꿈을 놓지 않도록 붙들어준 고마운 존재다. 네이처는 또 다른 신곡 ‘버팀목’에서 팬들에게 “날 끝까지 잡아줬죠”라며 “언제나 날 믿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소희는 “언젠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면 모두 울 것 같다”면서 “리프에게도 ‘힘내.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네이처는 ‘리카 리카’와 ‘버팀목’이 실린 음반 패키지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한다. 지난 19일 모금을 시작해 목표액 90% 가까이 달성했다. 로하는 “언젠가 음악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 팬덤 이름을 시원하게 외치고 싶다”고 소망했다.

네이처 “망하면 어때? 즐기자!” [쿠키인터뷰]
네이처. n.CH엔터테인먼트

노력과 재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망한 그룹’으로 불리는 냉혹한 현실에도 네이처는 “나 자신을 믿는 힘”을 잃지 않는다. 로하는 “멤버들 덕분”이라고 했다. “인복을 타고 났나 봐요. 멤버들이 있어 든든해요.” 그는 신곡 안무를 연습하다가 다리를 다쳐 ‘리카리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지 못했다. 팀에 피해를 줄까 걱정하는 그에게 멤버들은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하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팀 리더인 루는 “로하가 감독이 돼 우리 안무를 지켜봐 줬다. 덕분에 합이 잘 맞아서 고마웠다”고 돌아봤다.

“데뷔 전에는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성공한 건 줄 알았어요. 무대에 서기까지 과정은 물론, 그 후에 이어지는 일들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가수가 되고 나서 깨달았죠. 이제는 감사함을 알며 자기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는 지금을 좀 더 즐기고 싶어요.”(루)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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