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보는 두 가지 시선

기사승인 2022-02-11 06: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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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서울지하철 5호선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아 또야. 짜증나” 서울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피켓을 든 장애인 시위대를 본 남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휠체어 4대가 천천히 열차에 올랐다. 기존보다 9분가량 출발이 늦추어졌다. 일부 승객은 익숙하다는 듯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 남성은 시위대를 향해 “XXXX들아, 어제도 30분이나 지연시켜놓고”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또 다른 남성도 “그만하고 갑시다. 우리도 회사 가서 먹고살아야 합니다”라고 화를 냈다.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 활동가는 “욕을 먹더라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겠다”며 “욕하신 만큼 저희를 좀 기억해달라”고 응수했다.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나흘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를 보는 시민 시선은 엇갈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10일 오전 7시30분부터 서울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광화문역을 거쳐, 4호선 혜화역까지 1시간가량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휠체어에 탄 4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목에 피켓을 걸었다. 피켓에는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의 사진과 함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예산을 증액 반영해달라는 게 시위의 주된 목적이다. 서울시가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공사 예산을 119억원에서 96억원으로 삭감한 것도 문제로 봤다. 

전장연 활동가는 “우리의 요구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법이 일부 개정됐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교통수단을 편하게 이용할 수 없다. 왜 장애를 이유로 지하철을 탈 수 없느냐”고 말했다. 
 
이날 열차 운행에 일부 차질이 생겼다. 각 역에서 짧게는 1분, 길게는 9분가량 열차 출발이 지연됐다. 열차와 플랫폼의 단차가 넓은 역은 휠체어를 타고 하차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준비해둔 이동식 발판을 대 하차를 도왔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서울지하철 5호선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시위대와 경찰 간 갈등도 있었다. 이날 경찰 및 철도사법경찰관 50여명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배치됐다. 이중 20여명은 시위대와 함께 지하철에 탑승했다. 승하차가 지연되자 경찰은 “의도적 지하철 운행 방해에 대해 조치하겠다”며 휠체어를 들어 옮겼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당신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휠체어가 망가질 수 있다. 손대지 말라. 우리가 움직이겠다”며 반발했다.
 
전장연은 지난 3일부터 평일마다 매일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진행해왔다. 이번 시위는 지난 7일부터 연속 나흘째다. 이들 단체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장애인 활동보조 예산 책임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등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서울지하철 5호선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일각에서는 장애인의 시위가 출근길 불편을 가중시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위를 지켜보던 한 중년 남성은 “최근 출근길 열차 지연을 자주 겪었다. 매우 불편하다”면서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시위를 이해하지만 출근길은 피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직장인 김모(52)씨는 “장애인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이면 좋겠다”며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요구를 관철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고모(60)씨도 “의견을 주장할 수 있지만 시민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 

다만 장애인의 시위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다. 출근길 시위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하철이 연착해 회사에 30분 늦었지만 이들의 시위를 지지한다. 장애인도 불편 없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평생 불편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출근길 잠깐 불편한 것은 감수할 수 있다”, “출근길 연착으로 화가 났지만 장애인이 21년간 외쳐온 요구가 이제야 내 귀에 들리는 것을 보면 이 방식이 맞는 것 같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등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서울지하철 5호선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전장연은 대선 후보들과 정치권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과 관련해 의미 있는 약속을 한다면 시위를 멈추겠다는 입장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지난 2001년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이용자가 사망했다. 이후 21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가 지속됐다”며 “시민들이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집단적으로 타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31일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이 시위는 정치권의 외면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대선 후보가 의미 있는 답변을 하는 날 시위를 멈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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