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데스노트보다 보기 힘든 뮤지컬 ‘데스노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4-29 06:00:14
- + 인쇄
‘찐’ 데스노트보다 보기 힘든 뮤지컬 ‘데스노트’ [쿡리뷰]
뮤지컬 ‘데스노트’에 출연 중인 홍광호(왼쪽)와 김성철. 오디컴퍼니

천재 소년 야가미 라이토는 두려울 게 없다. 이름과 사망 원인을 적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어서다. 평소 “법이란 구멍투성이”라고 믿던 그는 데스노트로 악인을 벌해 정의를 실현하리라 계획한다. 이런 라이토를 명탐정 L이 뒤쫓는다. 2000년대 초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본 만화 ‘데스노트’ 내용이다.

이 만화를 각색한 뮤지컬 ‘데스노트’가 지난 1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2017년 이후 5년 만의 공연이다.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새로 제작을 맡았다. 초연 당시 매진 행렬을 이끈 뮤지컬배우 홍광호와 김준수가 각각 라이토와 L로 호흡을 맞추고,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로 스타덤에 오른 고은성, SBS ‘그 해 우리는’으로 주가를 높인 김성철이 합류했다. 화려한 출연진 덕분에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관객 사이에서 ‘진짜 데스노트보다 뮤지컬 데스노트를 보는 게 더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줄거리는 원작과 비슷하다. 라이토는 “썩은 인간들은 제거하는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데스노트로 악인을 처단하고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고자 한다. 경찰과 공조해 라이토를 추적하는 L은 승부에서 이기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승리를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도 내던진다. 원작은 둘의 두뇌 싸움을 통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지, 결과가 과정을 압도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법과 공권력을 향한 믿음이 부서지고, 사적 복수와 징벌이 정의로 통용되는 요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질문이다.

‘찐’ 데스노트보다 보기 힘든 뮤지컬 ‘데스노트’ [쿡리뷰]
‘데스노트’에서 사신을 연기하는 서경수. 오디컴퍼니

반면 뮤지컬은 이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에 집중한다. 대학에서 만난 라이토와 L이 테니스를 치며 심리전을 벌이는 노래 ‘놈의 마음속으로’가 대표적이다. 웅장한 음악과 시원시원한 배우들의 목소리, 무대가 회전하는 것처럼 착시 효과를 주는 연출 등이 어우러져 박진감을 높인다. 작품은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속고 속이는지를 서술하기보단 심리전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더욱 몰두한다. 많은 텍스트를 전달하기 어려운 장르적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관객에 따라서는 변죽만 울린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번 시즌 ‘데스노트’의 또 다른 주인공은 그래픽 영상이다. 실제 세트를 대신해 공간을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관객은 대학 교정, 도쿄 거리, 라이토의 침실, 경찰본부 등을 빠르게 오갈 수 있다. 현실세계는 물론, 사신(死神)들이 사는 저승세계도 그래픽 영상으로 구현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3㎜ LED 1380장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가 공연장 벽면·바닥·천장에 깔렸고, 무대 전면과 양 측면에 설치된 초고화질 레이저 프로젝터 3대가 영상을 투사한다.

홍광호는 야심차고 자신감 넘치는 라이토를 육중한 성량으로 표현한다. 앳된 외모 덕에 불혹을 넘기고도 고등학교 교복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2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김성철은 이글대는 눈빛으로 L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괴짜 같고 비현실적인 L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로 설득해낸다. 라이토 곁에 머무는 사신 류크는 강홍석·서경수가 번갈아 가며 연기하고, 또 다른 사신 렘은 김선영·장은아가 맡았다. 라이토를 짝사랑하는 아이돌 가수 미사 역에는 케이와 장민제가 캐스팅됐다. 공연은 다음 달 26일까지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찐’ 데스노트보다 보기 힘든 뮤지컬 ‘데스노트’ [쿡리뷰]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