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비밀 다 지켜줄게” 교육부 위클래스, 학생 모르게 사생활 공개

기사승인 2016-07-28 22:21:21
- + 인쇄

[기획] “비밀 다 지켜줄게” 교육부 위클래스, 학생 모르게 사생활 공개

# “가족 관계에서 친가와 엄마와의 갈등이 심하다고 표현함”

“학부모가 자녀에 대해 별로 할말이 없다고 함”

“제일 불안한 것을 물으니 집에 혼자 있는 것이라고 함. 요즘 아빠는 집에 안 계시다고 함”

“화가 나면 자제력을 잃고 극심하게 반항을 함” (개인적으로 병원치료 중임)

경계성 지능아(자폐성 3급) 이모(19)군은 2014년 학교폭력을 당했으나 지난해 가해학생과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군의 어머니 윤모(49)씨는 이들을 분리해달라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있다.

당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전학은 과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후 윤씨가 제기한 재심청구도 기각됐다. 현재 윤씨는 경기도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상대로 행정 심판을 진행 중이다.

윤씨는 지난달 열린 첫 번째 재판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 측이 이군이 겪고 있는 수면 장애, 우울증, 정서 불안 등의 증상이 학교폭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위클래스’(wee class·친한친구교실) 상담 일지를 기타 증빙 자료로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위클래스는 교육부가 2009년 1월부터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따돌림 등으로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시작한 상담교실이다. 

윤씨는 “아이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고, 부부 관계가 좋지 않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대체 학교폭력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마치 치부가 드러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또 “상담 내용을 학교가 활용할 수 있다고 고지를 받은 적도, 동의를 한 적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위클래스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학교가 위클래스 상담 내용을 임의대로 활용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비밀 보장 당연하니 모든 고민 털어놔봐요”…과연 그럴까?

‘상담실에서의 이야기는 비밀과 안전을 절대 보장합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2013년 발행한 ‘위프로젝트 책자’에는 이같은 문구가 쓰여있다. 많은 학교들 역시 위클래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가정통신문에 ‘비밀 보장은 당연하니 모든 고민을 털어놔도 된다’, ‘상담내용은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4조 2항은 ‘전문상담교사는 학교의 장 및 자치위원회의 요구가 있는 때에는 학교 폭력에 관련된 피해학생 및 가해학생과의 상담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학교 폭력에 관련된’이라는 문구의 의미가 정확하지 않아 학생의 사생활까지 공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공개할 상담 내용의 한계는 상담자의 재량에 달려있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클래스 운영 가이드’에 따르면 ‘비자발적 상담(교사나 학부모 학생부 의뢰)은 상담자가 비밀유지 한계를 결정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위클래스 상담은 비자발적 상담이 대부분이다.

물론 내담자가 미성년자인 학생이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져야 할 상담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논란이 됐던 부산 학교전담경찰관과 여고생 간의 부적절한 관계는 학생이 위클래스 상담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며 알려졌다.

그러나 위클래스 상담사와 학교에 전적으로 상담 내용에 대한 재량권이 있는 한 학생의 사생활 공개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학생, 학부모에게 비밀보장 예외 조항 고지할 의무는 無

이 뿐 아니다. 위클래스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상담 내용이 공개될 수 있다고 알리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을 법적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현행 위클래스는 매 학기 초 가정통신문을 일괄 발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참여 여부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서명을 동의서 형식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상담사가 가정통신문에 비밀보호의 한계를 명시할 의무가 없는 탓에 정작 알려야 할 중요한 내용은 빠져있는 셈이다.

윤씨 역시 ‘위클래스 상담에 동의하며, 상담자를 믿고 상담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가정통신문 내용을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서명 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상담전문가 윤리강령은 “내담자에게 비밀 보호의 한계를 알리고 비밀 보호가 불이행되는 상황에 대해 인식시킨다” “법적으로 정보의 공개가 요구될 때는 비밀보호의 원칙에서 예외이지만, 법원이 내담자의 허락 없이 사적인 정보를 밝힐 것을 요구할 경우,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정보를 요구하지 말 것을 법원에 요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담사 소속 기관장은 학교장…“공개 요구하면 거부하기 어려워”

설령 위클래스 상담사가 원치 않더라도, 학교의 장 및 자치위원회가 상담 내용 제출을 요구하면 이를 거절하기는 힘들다. 상담사는 학교에 소속돼있고, 교육부가 아니라 학교장이 직접 채용하기 때문이다.

이군을 면담했던 상담사도 무기계약직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절차대로 했을 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 아동상담소 소장은 “위클래스 상담사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데다 박봉을 받기 때문에 학교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교육청 학생생활안전담당 관계자는 “위클래스 상담사가 비밀보장 한계를 가정통신문에 적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면서도 “앞으로 의무화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지대학교 예술심리치료학과 최명선 조교수는 “상담사가 학부모와 학생에게 상담 내용이 공개돼 학교가 활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폭력이 발생할 시 학생들에게 위클래스가 아닌 다른 상담기관에서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방안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