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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놓인 영세업체 ‘근로자’…“연차도 야근수당도 없어”

이소연 기자입력 : 2016.09.28 07:00:00 | 수정 : 2016.09.27 14:25:53

사진=박태현 기자

[쿠키뉴스=이소연 기자] # “아플 때,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게 가장 힘들어요”

입사 3년 차인 직장인 A씨는 연차휴가가 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한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것도 예사다. 야간·휴일 근무를 해도 가산 수당은 주어지지 않는다. 사장의 지시에 따라 매일매일 퇴근 시간이 달라지지만, 불만을 표할 수도 없다. 사장은 A씨를 비롯한 동료들을 ‘정당한 사유 없이’ 자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A씨 직장의 근로자는 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A씨의 직장에서 이 모든 일은 ‘합법’이다. 

위와 같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이를 보완할 법 제도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 기준,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영세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63%에 달했다. 전체 근로자 1602만7236명 중 309만2665명이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편의점, 카페, 주유소, PC방 등 소상공업종과 일부 IT업체 및 치과기공소, 출판사 등 소기업이 대표적이다. 

◇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 일부만 적용…연차·야근수당·주5일제 적용 안 돼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영세사업장에는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 퇴직금 지급 등 일부 기준만 적용된다.

사진=국민일보 DB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1일 8시간이다. 그러나 영세사업장은 무제한 연장근로가 허용된다.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초과근로를 하더라도 가산수당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탓에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은 적은 임금을 받으며 격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주는 15일의 유급휴가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5년 정규직 근로자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이의 총 근로시간은 한 달에 190.4시간으로 타 사업장 근로자에 비해 많았다. 반면 월 임금 총액은 202만4000원으로 가장 낮았다.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를 통보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30일 전에만 근로자에게 통보하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다. 영세업체에서 종사하고 있는 박모(27·여)씨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불이익이 염려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일 야간 근로를 요구해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영세업체 사업주 “우리도 ‘을’일 뿐…근로기준법 확대되면 일자리 사라질 수도”

영세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될 시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했다.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 카페, PC방, 주유소 등 소상공업종과 적은 인력으로 납부기한을 맞춰야 하는 소기업 등은 야간과 휴일에도 직원의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영세 주유 업체들은 현재도 인건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5인 이상 사업장과 동일하게 적용될 경우, 인건비로 인한 출혈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으로 제한 될 경우, 사업장 규모 대비 인건비 부담이 높아져 폐업률이 높아질 거란 의견이 제기됐다.

치과기공사협회 김태준 보험이사는 “영세 기공소에서 납부 기한을 맞추려면 연장근무가 필수적”이라면서 “근로시간이 규제된다면 새롭게 인력을 충원해야 하지만 대부분 영세 기공소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결국 기공소 자체가 폐업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최성경 부회장은 “창업 후 2년을 견디지 못 하는 소기업·소상공인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일반적인 근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경영상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수십 년째 개정 논의만…전문가 “근로기준법 자체가 바뀌어야”

사진=국민일보 DB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도록 개정하자는 논의는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지난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대통령령에 의해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했으나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진행하지 않아 무산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권한 일도 있다. 2008년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법 규정으로 명문화할 것’과 ‘1일 8시간 근로와 연장·야간·휴일 근로 시 가산임금 적용’을 제안했다.     

앞서 19대 국회에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 발의됐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개정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모두 적용토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전력에서 보듯,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박현희 노무사는 “영세업체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인식하더라도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며 “근로기준법을 통해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의 사업장이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예정하고 가산수당을 포괄적으로 지급하는 ‘포괄적임금제’를 적용하고 있기에 근로기준법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임금문제로 인해 위태로워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강희원 교수는 “현행 법률처럼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에서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부 예외조항을 두거나 특정 업종에는 근로시간을 다르게 적용하는 등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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