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대사실 숨기는 아동·반성 없는 부모…10명 중 1명은 재학대 피해

기사승인 2016-10-25 09: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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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소연 기자]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보호조치 미비로 재학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1만1715건의 아동학대 사례 중 9348건(79.8%)이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그러나 피해 아동이 부모와 분리된 사례는 2772건(23.7%)에 불과했다. 대다수 아동이 학대를 당한 본래 가정(원가정)에서 ‘보호’되고 있다.

문제는 재학대다. 지난해 보고된 재학대 사례는 총 1240건으로 전체 사례의 10.6%에 달했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학대를 당하는 아동은 10명 중 1명꼴이다. 

◇ 학대 아동 “엄마, 아빠 좋아요”…숨겨지는 학대 징후에 늘어나는 재학대 

재학대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는 피해 아동이 학대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해서다. 

지난 2014년 경북 칠곡에서 부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던 A양(8)이 숨졌다. A양은 숨지기 전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사와의 상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화상 등 학대 징후에 대해 “놀다가 다친 것” “언니랑 싸운 것”이라 주장했다.

아동학대 특례법의 제정 계기가 된 ‘울산 서현이 학대 사망 사건’에서도 피해 아동은 과거 기관과의 상담에서 “엄마, 아빠 모두 좋다” “아빠가 잘 놀아준다”고 말했다. 

현행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특례법)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행동강령에는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명시돼있다. 피해 아동을 응급조치에 따라 보호시설로 인도하려 할 때, 아동이 집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학대를 행한 부모와 분리하기 어렵다.

아동학대시민방지모임 공혜정 상임고문은 “학대 아동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상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칠곡 계모 사건에서 학대 아동의 언니인 B양은 부모와 분리된 후 2개월이 지나서야 당시 상황을 진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상담원 1명당 평균 80건 사례 관리…“인력 부족으로 구멍 생겨날 수밖에 없어”

아동이 학대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종합적인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운용되는 인력으로 촘촘한 관찰은 불가능하다.   

전국 60개(2016년 말까지 개소 예정 포함)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767명의 상담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아동학대 사건의 접수, 현장조사, 학대판단, 사후관리 등을 모두 담당한다. 

2015년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수행한 업무 총량을 산출한 결과, 상담원 1인당 연간 2520시간을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2163시간, OECD 평균이 1770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상담원 1명당 15건의 사건을 맡지만 우리는 평균 80건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이 지방 4~5개 시·도를 관리하는 곳도 있다. 상담원이 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길에서 시간을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 반성 없는 부모들…임시조치·기소유예 상담처분 안 받아도 그만

학대 행위자가 자신에게 내려진 교육과 상담 처분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아동학대 특례법에는 보호처분을 불이행한 학대 행위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임시조치’ 5호인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의 상담 및 교육 위탁’은 해당 사항에 속하지 않는다. 임시조치란 아동학대범죄의 재발이 우려될 때 실시되는 법원의 처분을 말한다.   

재판에서 상담과 교육 등을 조건으로 기소유예 혹은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받는 일이 거의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개월의 상담 처분을 받은 아동학대 행위자가 단 하루도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법원은 그에게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동국대 법학과 강동욱 교수는 “임시조치는 조기에 서비스를 제공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처벌 규정을 통해 실효성 있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소유예의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언제든 검사가 재기소 할 수 있으나, 상담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사례는 드물 것”이라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학대 예방 예산은 제자리걸음…전문가 “재학대 방지 위한 사회적 시스템 갖춰져야”

[기획] 학대사실 숨기는 아동·반성 없는 부모…10명 중 1명은 재학대 피해재학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8월30일 발표된 2017년 예산안에 따르면 아동학대 예방사업 예산에는 256억원이 편성됐다. 전년대비 71억원이 증가했다. 그러나 2015년 예산은 252억원으로 2년 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2013년 미국 보건부 산하 아동국에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집행한 예산은 약 8조2000억원이다. 일본도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연간 약 1조3588억원을 지출한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예방 예산 확충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사업본부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이 적정한 수의 아동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부가 예산이나 인력에 대한 추가적인 배정을 하지 않고, 학대 사건 발생 후 기관에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춘희 변호사는 “부모가 야간에 일을 나가는 등 여건상 양육이 어려워 재학대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부가 부모의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거나 사회복지사를 통해 보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재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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