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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으로] 장애를 장승으로 승화시킨 ‘뭐 만들까 공방’ 장승공예가 김윤숙

이영수 기자입력 : 2017.03.03 06:05:10 | 수정 : 2017.07.10 15:06:49

[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 댄스 무용가 김용우 씨의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장애를 장승으로 승화시킨 ‘뭐 만들까 공방’의 장승공예가 김윤숙 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장애를 장승으로 승화시킨 ‘뭐 만들까 공방’ 장승공예가 김윤숙

“컨테이너박스에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처음에는 한 달에 5만원도 못 벌었는데 이제는 자리를 잡았지요. 저는 작품 샘플을 가방에 갖고 다니면서 판매할 곳을 알아보고 다녀요. 영업을 뛰는 건데 처음에는 입이 안 떨어졌는데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뭐 만들까’하고 생각해요. 장승이라는 게 규모가 큰데 저는 장애가 있으니 큰 작업은 못 하고 열쇠고리 같은 소품을 만든 건데 그게 인기를 끌었어요.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해요.” 장승공예가 김윤숙

장애 때문에 한 번씩 공격적일 때가 있잖아요

“장애 때문에 한 번씩 공격적일 때가 있잖아요. 괜한 피해의식에 주위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거. 집을 나와 혼자 사니까 그런 점이 좋아요. 식구들한테 좋은 점만 보여 줄 수 있거든요.”

경기도 일산 ‘뭐 만들까 공방’의 김윤숙 씨는 대차고 당당하다. 그런 그녀도 한 때는 세수도, 양말 신는 것도 언니가 시켜줘야 하는 걸로 알았던 때가 있었다.

“연극 동아리활동을 하다가 6층 옥상에서 떨어졌어요. 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박수를 친다는 것이 뒤로 발라당 넘어가 버린 거예요. 아래 철망으로 떨어지면서 목뼈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심하게 다쳤어요.”

까르르 웃다 일어난 기절초풍할 사고. 스무 한 살의 윤숙 씨는 척추뼈가 부러지고 신경이 끊어져 겨드랑이 밑으로 완전마비가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한 달 만에 손 기능은 회복됐다. 흉수 3~4번에 해당하는 손상이었다.

“보상비 하나 없이 병원치료를 5년 동안이나 받다보니 돈을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98년도에 IMF가 닥쳤고 언니 오빠가 서른이 넘도록 시집장가를 못 가는 이유가 저 때문인 것만 같았어요. 천덕꾸러기 같고, 눈치만 봤어요.”

3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절박했다. 3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장애인 시설에는 가기 싫고 집에도 가기 싫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뭘까 싶어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무능력자로 볼 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97년에 일산직업전문학교에서 목공예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는 욕창이 있어서 대인관계가 안 좋았어요. 수업 끝나자마자 기숙사 방에 들어가 누워야 하니까 말 시키는 것도 귀찮고 몸이 아프니까 예민했던 거죠. 이동식 좌변기를 갖다 놓고 지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어요. 여자는 저 혼자였는데 장애인기능경진대회에 나가서 오기로 은메달을 땄어요.”

강냉이와 두유만으로 두 달을 버티기도

삼육재활원에서 귀금속 자격증을 땄고 일산직업전문학교에서는 운전면허와 나전칠기, 목공예 자격증을 땄다. 콘테이너 박스 하나를 빌려 나 홀로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 걱정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공공근로도 하고 박스 접기도 했다. 하청일이 이어지지 않아 강냉이와 두유만으로 두 달을 버티기도 했다.

“99년쯤이었나.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공예대전을 했는데 깨동백으로 만든 미니장승, 그걸 보고 반했어요. 1년간 지금의 사부님께 배우겠다고 경기도 양평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어요. 대소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차안에서 실수를 해서 갔던 길로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래도 나무를 깎는 일이 마냥 좋았어요.”

장승공예가로서 다사다난했던 18년

한국적인 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장승 열쇠고리는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기념품’으로 채택되었다. 문화체육부 의뢰로 220국 해외대사관에 증정하는 솟대를 만개나 작업하기도 했다. 장승공예가로서 다사다난했던 18년. 이제는 ‘뭐 만들까 공방’으로 장승공예를 배우고 싶다며 사람들이 찾아온다.

윤숙 씨는 들쭉날쭉한 수입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때로는 주변의 도움도 받으면서 장승공예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날이 갈수록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어제보다 나은 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 모두들 말렸지만 장애를 입고 나서도, 이 정도 기능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거예요.”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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