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으로] 휠체어 탄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상일 교수

기사승인 2017-04-04 09: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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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장애인 미술치료사 겸 화가인 김형희 씨의 이야기에 이어 휠체어 탄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상일 교수를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못한다 생각했어요. 동료 교수들이나 지인들이 휠체어 타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랬다고. 이런 몸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던 거죠. 그러다가 해봐라, 해봐라 자꾸 그러니까 떠밀리듯이 하게 된 거예요.”

2013년 정상일 씨는 세종문화회관에 다시 섰습니다. 건강 이상으로 입원했던 병원 베란다에서 정신을 잃고 떨어진 지 1년이 흐른 시점이었죠. 11층 높이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됐고 절망의 바닥을 치고 다시 돌아온 자리였습니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무대를 오를 것을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났었던 것에 비하면 출발이 좋았습니다.

“첫 무대는 솔직히 내가 다 지휘한 건 아니었어요. 러시아 민요 ‘백학’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이렇게 두 곡만 맡아서 객원 지휘를 한 거였죠. 그런데 무대란 게 이상도 하지. 아이고, 휠체어를 타고서도 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전처럼 두 다리에 체중을 실어 격정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지휘하기 위해선 방법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높은 지휘 단과 보면대 위 악보를 넘기는 일은 일견 휠체어로 해나가기엔 불안정한 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넘어지는 아찔한 일도 일어났죠.

그는 지휘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가급적 지휘자용 악보를 다 외워 버린 것입니다. 연습 때야 다른 지휘자들도 의자에 앉아서 한다지만 공연장에서 지휘자의 눈은 무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골고루 가서 닿아야 합니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통솔하기 위해서죠. 휠체어 위의 낮은 시선으로는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죠. 다행히 일어설 수 있는 기립형 특수휠체어가 있었고 그는 연주회 때만큼은 이를 대여 받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내 경우는 예전 직업으로 돌아간 시간이 짧았어요. 척수수술 받은 다음 욕창 때문에 반년을 병실에 누워 지낸 것 빼곤 재활치료 두 달 받으면서 복귀하게 된 거거든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력과 의욕이 오늘의 나를 만든 거죠.”

[일상의 삶으로] 휠체어 탄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상일 교수청소년기 이래 근 40년 동안 음악은 그의 전부였습니다. 고교시절 교회 성가대를 지휘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어 음악교사를 천직으로 삼았습니다. 고교 합창단을 이끌다가 대학 교수가 됐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국내외 20여 개국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활동적으로 살아온 그에게 음악 없는 인생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죠.

“지휘자는 일단 오케스트라와 교감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해요. 그냥 박자만 젓는 게 아니고 악기들의 특성을 다 파악하고 전체를 봐야 한다고요.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수 백 번을 연습해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처음엔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지휘자에게 음악인들은 따뜻한 환호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병상의 시간을 만회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공연 스케줄을 소화해 냈습니다. 믿고 도와주고 배려해 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속에서 체력적인 한계는 핑계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온 외국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을 때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휠체어 탄 지휘자에 대한 거부감 없이 오히려 ‘문제될게 뭐가 있냐’며 음악적인 능력을 인정하고 따라와 주었던 것이죠.

“장애인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게 있어요. 전에는 지휘자의 권한으로 군림했다고 하면 이제는 섬기는 자세로 지휘하게 된 것이죠. 지휘자의 지휘봉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다고들 하는데요. 그게 참 재미있어요. 휠체어 합창단을 조직해서 공연하고 있는데 여기 조직도는 지휘자가 맨 아래란 말예요. 다른 합창단과 달라도 참 다른 아마추어 합창단인데 제가 가장 낮은 자세로 지휘를 했을 때 좋은 화음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돌아온 공연장. 정상일 씨는 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휠체어 합창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걸 잊지 않고도 있습니다. 무보수 재능봉사 활동이 주는 보람과 즐거움이라니. 그는 이렇게 변해가는 자신이 싫지 않다고 합니다.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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