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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으로] 비록 기관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안양역 근무하는 정규명 씨

이영수 기자입력 : 2017.04.17 09:14:12 | 수정 : 2017.07.10 15:10:15

[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휠체어 탄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상일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불의의 사고로 기관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굳은 재활 의지로 안양역 철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계신 정규명 씨를 소개합니다.

쯧쯧쯧 언제 다쳤냐? 아이고 아까워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할머니들이 항상 쳐다보고 물어봐요. ‘쯧쯧쯧 언제 다쳤냐? 아이고 아까워라’ 늘 듣는 말이니까 농담으로 넘기곤 하는데 직장에선 그런 게 없단 말이에요. 제 나름의 직책이나 권한이라는 게 있고 제 자리가 있거든요. 일하다보면 일단 프라이드가 생기고 규칙적인 생활이 되니까 그것도 좋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 보면 제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돼요.”

기관사를 꿈꾸었던 철도 대학생

정규명 씨는 2000년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목을 다쳤다. 태풍이 불던 날, 미끄러운 빗길에 불법 주차해 있던 버스와 신문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부딪쳐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기관사를 꿈꾸었던 철도 대학생은 그 길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두세 달이 지나 다리도 못 쓰고 손가락도 자유롭게 못 쓴다는 걸 알게 되자, 한동안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죠.

“그때는 통상적으로 세브란스, 삼육재활원, 국립재활원, 3군데는 거쳐야 어느 정도 재활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저도 대기 순번을 기다리다가 3개월이나 지나서 국립재활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거기가 마지막 병원이었는데 나가서 뭐할지 막막해서 병원 3개를 돌며 2년간 재활치료에 매달리게 된 거죠.”

“자신감을 다 잃은 상태였습니다. 국립재활원 생활관에서 만난 사회복지사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한동안 더 방황하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영정보학과로 전과가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나가면 뭐할래?

“그분이 ‘나가면 뭐할래?’ 물어보더라고요. 철도대학교에는 엘리베이터나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거든요. 가면 뭘 하나 복학할 생각을 안 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힘들게 들어간 학교, 졸업장이라도 따라’는 거예요. 전공을 살려 기관사가 되기도 글렀고 제 생각에 답이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학교에 얘기해보면 되지 뭘 그리 겁내’ 그러는 거예요. 떠밀리다시피 해서 교수님께 전화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교수님들 사이에 저를 도와주려는 붐이 일게 되었어요.”

규명 씨는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놔두고 조금 서둘러서 진로 변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측의 배려로 과를 옮기게 되자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같은 걸 요청하려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자, 그걸 목표로 삼고 불편한 것을 참아내자고 결시한 것이죠.

그 전에는 학과 대표를 도맡을 정도로 쾌활하고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 규명 씨이었습니다. 하지만 과 동기들과 후배들이 수업 때마다 3, 4층 강의실로 휠체어를 들고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활기차게 지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졸업 때까지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다

“그때는 많이 위축됐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바뀌더라고요. 사무실 칸막이 안에 앉아서 손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장애인이란 걸 모르잖아요. 앞에선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게 잘 안 보이니까. 제 뒤쪽으로 와서 보면 그제야 휠체어가 보이는 거죠.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때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기계발을 더 하고 싶어져요. 예를 들어 미국인이 와서 신도림을 어떻게 가냐고 물어볼 때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되죠. 세상과 소통하다보면 더 많은 자극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월급을 떠나서 무언가 해야 할 동기가 생기는 거, 그게 제일 좋아요.”

규명 씨가 졸업할 때만 해도 국비생 철도대 졸업생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딸 수 있냐 없냐가 관건이었던 것이죠. 전산으로 시험을 보는 체제가 아니어서 손 글씨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규명 씨는 컴퓨터 활용 능력이라든가 정보처리 기사 자격증 같은 걸 따다 보니 서서히 자신감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든지 부딪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해보지 않을 땐 어마어마한 산으로 다가오거든요. 내가 저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저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문의를 해보면 손이 불편하니까 답안 체크하는 데 시간배분을 더 해준다거나 대필해 주는 제도 같은 게 있더라고요. 어마어마하게 좋은 제도가 많은데 우리가 그걸 모른다는 거죠. 겁이 나고 모를 때, 요즘은 이것 좀 해 주세요, 요구하면 되는 세상이니까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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