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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으로] 서부재활체육센터 헬스트레이너 조호석 씨

이영수 기자입력 : 2017.05.08 13:38:34 | 수정 : 2017.07.10 15:11:31

[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의사, 변호사, 다시 의사로 도전을 거듭한 박성민 씨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서부재활체육센터 헬스트레이너 조호석 씨를 소개합니다.

저 사람이 정말 운동을 알려줄 수 있을까?

“회원들 대부분이 장애인인데 처음엔 ‘저 사람이 정말 운동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런 눈빛이었어요. 2년 계약직으로 들어와 재계약이 안 되면 나가야 했죠. 저는 정규직 전환이 되었는데 항상 웃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했어요. 이곳에는 보통 1~2년 병원에 있다가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때가 우울해지기 쉽잖아요. 제가 조금 힘들더라도 밝게 웃어드리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다들 저 선생님은 항상 밝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죠.”

군 입대하고 바로 척수염이 재발해 조호석 씨는 허리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전 의사는 하반신 마비가 올 거라고 고지했습니다. 다행히 회복하는 과정에 워커를 잡고 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스물한 살 조호석 씨는 최선을 다한다면 나을 수 있겠단 희망을 안고 재활운동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되나?

“나쁜 생각도 많이 했어요. 형님은 군대 가 있고,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셨고, 혼자 집에서 재활운동을 하지만 좋아지는 것은 미비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했죠. 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만나는 것도 제가 좀 차단을 했어요.”

통원치료 3년이 넘어가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노력을 기울여도 좋아지는 게 안 보였죠. 목발 짚고 몇 걸음 걸어갈 순 있었지만 거기서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되나?’ 자살충동에 시달렸죠. 일단 운전면허증을 따고 차를 사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뭔가 계기가 필요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는데 저한테 굉장히 잘해주던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힘든데, 집에만 있는데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까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알아보니 국립재활원에 장애인 운전교육을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2000년 마침내 바깥세상으로 나온 그는 그곳에서 휠체어 농구선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귓전이 울리는 파이팅 고함소리, 휠체어바퀴 굴러가는 힘찬 소리에 호석 씨의 심장이 격렬하게 반응했습니다.

휠체어 농구가 빛 이었다

“저한테는 휠체어 농구가 빛이었어요. 처음에는 거기 형이 10개월 가까이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운동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허리힘도 생기고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처럼 잘하고 싶고 득점 많이 하고 싶고. 그러면서 건강했을 때의 성격으로 회복이 되었어요.”

일 년 정도 농구를 했을 때, 대표선수가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육상선수로 뛰었던 실력이 사라진 건 아니었죠. 코치와 감독이 적극 밀어 주기도 했습니다. 건강한 땀을 흘리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외국에 나가 경기를 하고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즐거웠다고 호석 씨는 기억합니다.

“6년이라는 세월을 휠체어 농구에 매달렸는데 그걸 직업으로 할 수는 없었던 게 문제였어요. 지금은 휠체어 농구 실업팀이 생겼지만 그게 불과 4~5년 안됐거든요.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니까 농구만 한다고 생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직업을 구해야겠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트레이너가 되는 것으로 목표를 잡게 되었죠.”

마침 호석 씨는 휠체어 농구를 하면서 근력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따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지금 직장이 된 서부재활체육센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하는 생활체육 시설이었는데 장비나 시설이 훌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환경은 좋았지만 장애인체육센터였음에도 비장애인 트레이너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장애인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장애인들에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어 보자

“장애인 체육이라면 제가 경험자잖아요. 이왕이면 경험도 살릴 겸 장애인 운동을 지도하고 싶었어요. 그때 조언해주셨던 분이 그곳에서 있던 지금의 스승님이에요. 비장애인 역도 선수출신이죠. 제게 헬스를 지도해주면서 ‘장애인들에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어봐라’, 이렇게 격려해주었어요.”

헬스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체육 지도자 자격증’부터 따야 했습니다. 1년을 공부하고 시험을 봤습니다. 그런데 미리 양해를 구했음에도 시험 장소는 5층이었습니다. 헬스 스승이 그를 업고 올라가 실기랑 구술면접을 보았습니다. 하반신 마비를 감안해 상체운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실기시험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직장생활 9년. 호석 씨는 자격증을 따고 난 뒤 뒤늦게 다시 대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휠체어 농구에서 종목을 전향해 11년째 장애인 역도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필요성이 커져서 대학 마치고 지금은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어요. 보디빌딩을 통해 몸이 근육질이 되니까 사회생활에 더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아요.”

호석 씨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죠. 직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철저하게 컨디션 관리를 합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는 참 행복하다고 하네요.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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