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지역사회 건강사랑방, 동네약국의 추억

기사승인 2017-09-05 16: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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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지역사회 건강사랑방, 동네약국의 추억
글·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쿠키 건강칼럼]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환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환자’(患者, Patient)란 무엇일까? 국어사진에서는 “병 들거나 다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럼 치료는 누가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한국사회는 1999년 의사와 약사의 역할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의약분업’을 경험했다. 의약분업 이전의 동네약국은 지약사회 주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건강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아프면 동네의원이나 병원이 아닌 동네약국부터 찾아 갔다. 약사와 먼저 상담한 후 동네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치료할지 아니면 동네의원이나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치료할지를 결정했다. 적어도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사도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지난 1999년 의약분업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아프면 동네의원이나 병원을 먼저 찾아간다. 현재 약국은 의사가 처방한 전문의약품을 조제하거나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장소이다. 2012년부터는 약국 이외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도 해열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파스 등 일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고, 최근 정부는 이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의약분업으로 말미암아 약사는 복약지도를 의사와 차별화된 고유한 업무로 할당받았다. 그러나 의약분업 후 18년이 지난 지금 ‘식후 30분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 정도의 복약지도 수준으로는 알권리 및 소비자 주권의식이 높아진 환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한국의 바둑고수 이세돌을 이기고, 아이비엠(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암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출연과 보편적 사용은 약사의 업무와 역할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특히, 약사의 복약지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환자의 질환명, 약품명, 나이 등에 최적화된 복약지도 컨텐츠를 제공할 능력을 갖출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고수를 이긴 것처럼, 어쩌면 인공지능 약사가 인간 약사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복약지도에 있어 약사는 ‘식후 30분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의 약사는 개별 환자에게 특화된 맞춤식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인공지능과 약 조제로봇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의 미래사회에서 약사 직종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소멸되는 직업 100개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그 안에 약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 미래사회에 인공지능 약사와 약 조제로봇을 능가하는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란 어떤 약사일까요?

‘개별 환자 대상으로 특화된 맞춤식 복약지도를 함으로써 만성질환 환자들의 복약순응도(환자가 약을 정해진 시간에 정확한 용량과 용법으로 꼬박꼬박 복용하는 비율)를 높이는 습관을 길러주고, 의약품 안전사용을 돕는 약사’이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따라올 수 없는 감정적 영역인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복약지도’를 하는 약사이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동네약국 약사에게 제안하고 강조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 한국의 환자들은 환자 본인을 포함하여 가족 중에 경증이든 중증이든 질병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평소 자주 복용하는 약들이 있다. 이를 일반적으로 ‘가정상비약’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가정상비약을 구비할 때 약사가 참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약국이나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의약품들을 구입하고, 관리도 거의 되지 않아 유통기간이 경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환자의 의약품 안전사용이나 치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사회 주민들이 연간 1회 또는 수시로 가정에서 보관하고 있는 가정상비약을 통째로 동네약국에 가져가서 약사와 상담한 후 가족들에게 가장 적합한 가정상비약을 구비하고, 이와 함께 안전한 의약품 사용에 대한 복약지도를 받는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이 18년 전 의약분업 이전 지역사회에서 동네약국 약사들이 수행했던 건강사랑방 같은 역할을 다시 회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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